월드컵 주가(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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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주식투자 행위의 심리적 배경을 정치와 스포츠에 비유하는 전문가들이 있다.물론 정치와의 비유는 부정적 측면이고,스포츠와의 비유는 긍정적 측면이다.주식을 사고 파는데 있어 정치적 권모술삭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그리고 주식을 거래할 때 는 전세를 정확히 판단하는 지피지기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래서「상대방(시황)의 저항과 공세가 만만치 않을 때는 일시적 후퇴를 도모해 가며 전렬을 가다듬으라」든가,「절묘한 타이밍을 잡아공격의 고삐를 조절하라」, 또는 「한 꺼번에 지나친 정력을 소비하다가는 패하기 십상」이라는 따위의 마치 스포츠 해설과도 같은 조언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스포츠에 비유한 주식투자에의 조언들은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것일뿐 막상 실전에 들어가면 투자자들의 심정은 하나같이 조급해지게 마련이다.전문가들은 주식거래에 있어 정치흉내를 내는것은 금물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나 아이로니컬하게도 투자자들이 가장 쉽게 영향을 받는 것은 정치상황의 여러가지 흐름이다.
최근 전쟁위기설을 둘러싸고 상황이 거듭 뒤바뀌면서 주식시세가 큰폭으로 변화를 보인 것이 좋은 예에 속한다.
그런데 지난 18일 오전 미국 댈러스에서 한국과 스페인의 첫경기가 벌어지는동안 주가가 시시각각 변하는 흥미로운 양상을 보였다.오전9시40분 개장되면서 전날보다 3.7포인트나 상승세를 보이던 주가가 한국팀이 두골을 잃어 패색이 짙 어지자 2.0포인트나 떨어지더니 후반전 종반 극적으로 두골을 만회해 동점을 이루는 순간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7.65포인트나 오르는 것으로 이날 오전장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만약 한국이 승리를 거뒀다면 더 큰 폭으로 올랐으리라」는 전문가들의 견해는 꽤 설득력이 있다.그렇게 보면 전쟁위기설로 한껏 위축됐던 전체 국민,아니면 최소한 주식투자자들의 심리가 월드컵에서 보여준 우리 선수들의 투혼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인해 다소간 안정을 찾았다는 얘기도 된다.이같은 추측이나 분석이 옳으냐 아니냐 하는 것은 오는 24일 볼리비아와의 대전때 주식시세의 추이로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꼭 주가와 관련된 측면에서만 아니라 한국팀의 승전보는 전체국민의 정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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