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같은 아빠 ‘프렌디’가 뜬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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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05면

‘삼남매 아빠’이달수씨가 퇴근 후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맏딸 상지·둘째 상빈·막내 상걸. 신동연 기자

한국수력원자력 발전처에 근무하는 이달수(43) 과장은 일요일이면 ‘우리궁궐 길라잡이’로서 경복궁 안내를 한다.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이 과장은 역사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 그가 9개월 동안 교육을 받고 지난해 10월 궁궐 해설가로 변신한 이유는 아이들 때문.

권위 벗고 달라지는 아버지들

“아이들을 유적지에 데리고 다니면서 설명하려고 역사책을 들여다보다가 해설사까지 됐네요.”

연방 이소룡 흉내를 내며 아빠에게 장난을 거는 막내 상걸(7)이, 아빠 허리에 다리를 감고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둘째딸 상빈(8)이, 살짝 떨어져서 배시시 웃고 있는 맏딸 상지(12). 성수초등학교 1·2·6학년인 삼남매는 주말마다 아빠와 답사여행을 간다.

막내 상걸이가 젖먹이 시절 이 과장은 경북 울진에서 근무했다. 주야간 교대근무로 주중에 짬이 나자 아이들을 데리고 인근 경주며 강릉, 안동으로 놀러 다녔다. 아이들이 유적지에 지겨워하지 않고 관심을 보이자 놀이동산보다 유적지가 낫다고 판단해 아예 답사여행으로 방향을 정했다. “아빠 이게 뭐야?” 연방 묻는 아이들을 위해 역사책을 사서 공부를 하다 보니 재미가 붙었다.

여름 휴가 때는 전국을 돌았다. 충남 공주에 있는 무령왕릉, 전남 강진에 있는 다산당도 다녀왔다. 삼남매를 데리고 하루 종일 걷다 보면 '애들이 커서 기억이나 할까' 싶었지만 맏딸 상지가 3학년 교과서에 나온 무령왕릉을 보면서 “나 여기 가본 적 있다”고 좋아했다.

“상지가 겨우 대여섯 살 때 갔는데 그걸 기억하더라고요.”

2002년 서울로 올라온 뒤에도 답사여행은 계속됐다. 덕수궁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을 보고 “세종대왕이 여기 살았었느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답을 못한 뒤 역사 공부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재작년 ‘우리궁궐 길라잡이’에 응모한 것도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서였다. 지금은 덕수궁(경운궁)이 세종이 승하한 지 한참 뒤인 임진왜란 이후에 지어졌다는 것을 안다.

상지는 답사 효과를 톡톡히 봤다.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 전북 고창읍성 등 가족들이 함께갔던 유적지가 교과서에 수두룩하게 실려 있다. 상지는 “특별히 따로 안 외워도 되니까 좋다”고 말한다.

아빠가 경복궁 해설을 하는 날이면 상지는 보조자료를 들고 따라나선다. 정문부터 차근차근 돌기 때문에 두세 시간은 넉넉히 걸리는데도 한여름 뙤약볕 속에서 함께 걸으며 물통을 건네던 맏딸이 아빠는 자랑스럽다. 이 과장은 서울 역사를 더 공부하기 위해 ‘서울답사팀’에 가입했다. 격주 토요일마다 답사 갈 때 꼭 맏딸을 데리고 간다. 20명 회원 중에 아이를 꼬박꼬박 데리고 오는 사람은 이 과장뿐이다. 지난주엔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홍유릉에 다녀왔다. 상지는 “금요일 밤에는 아빠가 내일 갈 곳엔 어떤 사연이 있는지 재미있게 설명해준다”며 즐거워했다.

답사가 없는 토요일엔 가족이 함께 서울 근교 유적지를 간다. 얼마 전 경기도 연천에 있는 신라 경순왕릉에 다녀왔다. “비 온 뒤 무지개가 정말 예뻤다”고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다.

주중에는 애들을 볼 시간이 얼마 안 되지만 어떤 식으로든 함께 놀아준다. “우리 공부하는 데 방해되게 아빠는 만날 놀자고 그래” “우리 아빤 진짜 신기해, 그지?” 삼남매가 종알거리자 아빠는 웃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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