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일궈낸 한국축구(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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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편의 완벽한 드라마였다.무더운 날씨,달리는 체력,그리고 무엇보다 세계축구 전문가들의 객관적 평가로는 스페인에 결코 적수가 되지 못하리라던 한국 축구가 18일 개막된 94년 미 월드컵 축구 첫경기에서 세계 랭킹 7위의 스페인과 극 적인 무승부를 이끌어낸 것이다.
예상키 어려웠던 서전에서의 이 결과는 한마디로 정신력의 승리요,자랑스러운 투혼이 빚어낸 한국민족 특유의 빛나는 성과라 할수 있다.더욱이 전반전을 잘 싸우고도 골을 얻지 못한 뒤,후반에 들어서자마자 불과 몇분만에 잇따라 두골을 빼앗겼을 때까지만 해도 국민들은 한골만이라도 만회해 골차를 좁혀주기만 기대했었다.그러나 어렵게 한골을 얻고난 뒤 후반전이 끝나기 직전에 이룩한 동점골은 현지의 한국 선수단은 물론,우리 국민 모두에게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안될 일이 없 다」는 강한 신념을 불어넣어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번 월드컵에 출전하면서 한국팀은 16강 진출이 목표였다.그러나 이같은 소박한 목표조차도 세계의 전문가들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평가했다.무리도 아닌 것이 한국팀의 결승진출 가능성은 무려 2백1분의 1로 24개 본선참가국 가운데 최하위였다.더구나 같은 조에 속해있는 독일·스페인·볼리비아가 전통적 축구 강국이기 때문에 16강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팀의 목표는 우리 국민들에게 조차도 회의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스페인과의 첫 경기를 시종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본 우리 국민들은 이제 16강 이상의 결과까지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는데 첫 경기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비록 승리가 아닌 무승부이기는 하지만 첫 경기에서 보여준 강인한 정신력과 그에 따른 자신감은 우승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독일과의 경기에서도 온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의외의 결과를 낳을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더구나 월드컵 통산 랭킹 40위에 머무르고 있는 한국이 11위에 올라있는 스페인과 막상막하의 대등한 경기를 치렀다는 사실은 이제 한국 축구도 세계의 축구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의 수준에 올라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그렇다고 해서 자만심에 빠진다면 다시금 급전직하의 우려도 없지 않다.스포츠엔 보통기적이 있을 수 없다지만 기적을 일궈내는 것은 강인한 정신력과 불요불굴의 투지임을 월드컵의 모든 경기가 끝날 때까지 선수단 모두는 가슴속 깊이 깊이 새겨두어야 할 것이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면 그 결과로 인해 매도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그런 점에서 국민들 모두 역시 뜨거운 마음으로 성원하되 한게임 한게임의 경기결과에 일희일비하여 선수단에게 정신적 부담을 주는 자세는 지양하고,오직 격려만을 보내야 한다.남은 경기에 계속 기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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