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북 '핵 확산' 경고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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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 주말 북한이 시리아에 모종의 핵물질 이전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영국과 미국 언론에서 불거진 이래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뚜렷한 증거 없는 설에 불과해 곧 사그라질 것"이라 주장해 왔다. 그러나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19일 "북한 핵 문제가 제기됐을 때부터 북한의 핵확산도 우려해 왔다"며 "이 문제를 6자회담에서 다룰 것"이라고 처음 밝혔다.

이어 부시 대통령도 같은 입장을 밝힘에 따라 다음주 중 열릴 것으로 전망되는 6자회담에서 이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 북한의 핵확산 의혹을 첫 보도한 뉴욕 타임스에 정보를 흘린 인물은 미 국무부의 비확산담당 관리일 가능성이 크다고 미 행정부와 밀접한 워싱턴 소식통이 20일 말했다. 소식통은 "부시 행정부를 떠나 있어 구체적 정보가 없는 네오콘들보다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발 빠른 대북협상 행보에 불안감을 품은 국무부 내 비확산부서에서 이번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네오콘이 의도적으로 흘린 게 아니라는 것이다.

워싱턴 정가 소식지 넬슨 리포트는 북한이 시리아에 넘긴 것은 핵이 아닌 미사일일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북한은 1980년대부터 시리아에 미사일과 관련기술을 판매해 왔다는 게 근거다. 그러나 만일 북한이 핵과 관련해 시리아에 무언가를 넘겼다면 핵무기나 장비보다는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HEU) 관련 기술(지식)일 가능성이 크다고 워싱턴 소식통들은 전했다. 시리아는 초보적 수준이지만 플루토늄 핵 개발을 개시한 단계라 굳이 북한에서 플루토늄(또는 무기)을 받아야 할 필요성이 별로 없다. 또 우라늄 핵무기는 북한도 아직 보유하지 못한 단계이고, 그 제조에 필요한 원심분리기 등 장비 역시 북한이 해외로 이전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란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2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시리아에 전달한 것이 (핵 관련)물질이건 정보이건 상관없이 6자회담에서 똑같이 중요한 사안"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북한의 대시리아 핵확산 의혹은 이스라엘이 시리아 영토 내의 핵 관련 의혹 시설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정보를 공유하면서 불거졌다. 이스라엘은 문제의 시설에 대한 영상정보를 미국 정보기관에 전달했으나 미 정보기관은 이들 자료만으로 북한과 시리아 간의 핵 협력 여부를 단정짓지 못해 '가능성' 차원에서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식통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 '빅딜'을 이루려는 의욕이 높아 북한의 해명을 듣는 수준에서 이 문제를 조용히 해결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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