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무대장치·의상 없는 피가로의 결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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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최초로 내한한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공연 모습. [사진제공=크레디아]

“그런데 만약 피가로가 돈을 갚게되면 어떡하지? 하긴 자기가 무슨 수로 갚겠어?”

 ‘피가로의 결혼’ 중 백작 역을 맡은 성악가가 지휘자에게 바싹 다가서 노래를 했다. 지휘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 리 없지’라는 눈짓을 보내자 객석에서는 ‘와’하는 웃음이 터졌다.

 원래 오페라 무대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 19일 예술의전당에서 연출됐다. 빈 국립 오페라극장의 오페라 콘체르탄테(Opera Concertante) 공연에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는 공연의 묘미를 살리는 역할을 했다. 본래 오페라에서 오케스트라는 무대와 객석 사이의 보이지 않는 곳(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연주하는 것이 보통. 하지만 무대장치와 의상·연기 등을 생략한 오페라 콘체르탄테에서는 콘서트에서처럼 무대 위에서 성악가들과 함께 연주한다.

 350년 전부터 세계 오페라의 흐름을 주도한 극장의 첫 내한무대였던 이날 공연에서 주인공은 오자와 세이지(72)가 이끈 오케스트라였다. 관현악단은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무대 위로 올라와 힘을 발휘했다. 오케스트라는 서곡에서 예민한 현악기의 소리로 세계적 수준을 보여준 후 성악가들과도 고급스러운 앙상블을 들려줬다.

 이날 공연한 성악가들은 조금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거나 중간중간 지친 소리를 냈다. 가사의 묘미와 정서는 잘 전달됐지만 소리의 질은 세계적 극장에 거는 기대를 충족시키기 힘들었다. 하지만 노장 오자와의 오케스트라가 이 약점을 보완했다.

 오자와는 공연 당일 오전 잡혀있던 기자회견을 갑자기 취소했다. “공연에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2002년 환갑이 넘은 나이에 빈 국립 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오면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지휘자는 이번 공연에서도 열정을 보이고 싶어했다. 중국 상하이 공연을 마치고 한국에 온 그는 “3시간이 넘는 연주를 위해서는 체력을 안배해야 한다”며 연습에 몰두했다. 그결과 오케스트라는 긴 시간 동안 긴장감을 잃지 않고 연주를 펼쳤다.

 무대 장치가 없는 공연에서 오케스트라는 또다른 역할도 맡았다. 상대방을 속이거나 구석진 곳에 숨는 대목이 유난히 많은 이 오페라에서 출연진들은 오케스트라를 소품 삼아 그 속에 숨어 들어가기도 했던 것. 덕분에 청중들은 이탈리아어로 된 이 희극 오페라를 보며 마음껏 웃을 수 있었다. VIP석 45만원으로 올해 티켓 최고가 기록을 경신하며 19·20일 이틀동안 열린 이 콘서트는 예상만큼 큰 흥행은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공연을 주최한 크레디아는 “구체적인 판매상황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45만원짜리 자리엔 빈 곳이 많이 눈에 띄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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