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의 입증 부족" … 정윤재 영장도 기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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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이 20일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함에 따라 부산지검 청사를 나와 귀가하고 있다. [부산=송봉근 기자]

정윤재(44)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20일 기각됐다.

영장을 기각한 부산지법 염원섭 부장판사는 "범죄 사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고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사유를 밝혔다.

신정아(35)씨에 이어 정 전 비서관의 영장이 기각되자 검찰은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물증 없이 진술에만 의존한 검찰의 부실 수사가 낳은 '자업자득'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정 전 비서관은 부산의 건설업자 김상진(42.구속)씨로부터 지난해 7~8월 정상곤(53.구속) 당시 부산지방국세청장을 소개해 준 대가로 2000만원을 받은 혐의다. 김씨에게 자신의 형이 운영하는 회사에 12억원대의 공사를 맡기도록 요구한 혐의(알선수재.변호사법 위반)도 받고 있다. 그는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돼 이날 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영장 기각으로 김씨가 정 전 비서관을 포함한 부산 지역 정.관계 인사에 로비를 벌인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일단 제동이 걸렸다. 수사 계획의 변경도 불가피하다. 부산지검 정동민 2차장검사는 "영장이 기각된 이유를 분석해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검토하겠다"며 "정 전 비서관에게 김씨가 추진해 온 부산 연산동과 민락동의 부동산 사업과 관련해 또 다른 범죄 혐의가 있는지를 계속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또 서울 서부지법의 18일 신정아씨 구속영장 기각으로 빚어진 검찰과 법원의 갈등도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부산지검 관계자는 "신씨 영장 기각으로 법원에서 영장 발부에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사업자와 유착돼 있는 것을 보여주는 중대한 범죄 사실이 있는데도 영장을 기각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반발했다. 김경수 대검 홍보기획관은 "할 말이 없다"는 한마디로 불만을 표시했다.

정 전 비서관은 영장 기각으로 풀려나 귀가하면서 "모든 것이 나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 죄송하다. 많은 생각을 했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범죄 사실 입증 부족"= 법원이 밝힌 영장 기각의 핵심 사유는 범죄 사실에 대한 검찰의 소명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검찰이 정 전 비서관의 혐의에 대해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검찰이 밝힌 정 전 비서관의 혐의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김씨가 세무 조사 무마를 위해 국세청 간부를 소개해 달라고 요청하자 정 전 청장과의 만남을 주선한 대가로 2000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김씨가 정 전 청장과의 식사 자리를 주선한 것은 지난해 8월이다. 검찰이 그 대가로 돈을 받은 시점으로 제시한 것은 지난해 말과 올해 2월이다. '알선'한 시점과 '대가'를 받은 시점이 크게 6개월이나 차이가 난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대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두 번째 혐의는 정 전 비서관이 정 전 청장을 소개해 준 대가로 형이 운영하는 업체에 공사를 맡겨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염 부장판사는 "정 전 비서관이 이를 적극 부인하고 있고, 김씨의 진술만으로는 법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정 전 비서관은 이날 영장실질심사에 앞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검찰이 혐의 사실에 포함시킨) 해당 공사는 12억이 아닌 150억원짜리 공사"라며 "형의 회사는 월매출 6000만원에 직원 다섯 명의 작은 회사로 그런 일을 맡을 능력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일각에선 영장 기각 사태를 자초한 것은 검찰의 부실한 수사에 따른 자업자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은 7월에 정 전 비서관이 김씨와 정 전 청장의 만남을 주선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범죄 단서가 없다"는 이유로 정 전 비서관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 언론이 문제를 제기한 8월 말에야 '늑장 수사'를 시작한 것이다.

부산=이상언.민동기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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