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아소 확충,절실하다(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경기가 나아지면서 일손이 부족하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특히 전문기술인력과 단순기능인력의 부족이 심각하다. 전문기술인력의 부족은 하루 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만 단순기능인력은 아직 국내에서 충당할 여력이 충분하다.
우리 사회엔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유휴인력이 2백6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중 대부분이 여성,특히 기혼여성인력이다. 총취업자수의 15%에 가까운 엄청난 인력을 사장시켜놓고 인력난 운운하는 것은 한참 잘못된 일이다. 여성인력의 활용을 가로막는 중요한 요인은 기혼여성이 마음놓고 직장에 다닐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못한 점이다. 그 단적인 예가 탁아소문제다.
우리나라의 어린이 보육시설은 93년말 현재 5천4백90개다. 이들 시설에서 15만여명의 어린이를 돌볼 수 있다. 그러나 보호대상 취업여성 자녀는 1백만명에 이르고,이들을 보육하기 위해서는 2만4천여곳의 보육시설이 필요하다. 조금이라도 가정살림에 보태고자 직장을 갖고 싶어도 아이들을 맡길 수가 없다. 값비싼 사설 놀이방이야 저소득층 주부들로서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1년여전 여성단체협의회가 제조업 여성근로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72%가 직장 탁아소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떻게든 아이들을 맡기고 직장에 다니는 여성들이 이 정도라면,육아문제로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비취업여성의 절실한 필요성이야 더이상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정부가 이번에 국민연금기금에서 1천5백억원을 떼어내 보육시설확충에 투자키로 한 것은 만시지탄의 감은 있지만 매우 잘한 일이다.
국민연금기금은 그동안 자체 수익률 제고를 위한 금융상품 매입 외에 정부의 공공투자용 재원으로 활용됐으나 그 방대한 자금규모나 장기운용이 가능한 특성상 근로자주택 건설이나 사회복지시설 확충재원으로의 활용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어 왔다. 우리는 기금운용의 수익성을 훼손치 않는 범위내에서 기금의 일부를 사회복지시설 확충에 돌릴 수 있도록 한 정부 결정은 타당하다고 본다.
인력은 국가경제의 기본이며,올바른 인력수급정책은 국가경제 운용의 골간이다. 왜곡된 인력수급구조로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부담해가면서까지 해외인력을 수입하는 마당에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여성인력을 사실상 방치하는 것은 엄청난 사회적 낭비다. 성별 임금격차,승진 등 인사제도에서의 불이익 등 취업여성이 받는 차별대우도 시정해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은 기혼여성들이 유악문제로 취업할 엄두도 못내고 능력을 썩이지 않도록 뒷받침하는 것이다. 탁아소를 늘리는 일이 바로 이를 위한 사회적 기반조성의 첫 걸음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