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북한주장 여과없이 반영하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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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韓總聯) 제2기 출범식이 29일 전남도청앞 옥외집회를 끝으로 소년체전이 열리는 동안 광주에서 3일간의공식행사를 마쳤다.
전국 각 대학에서 모인 3만여명의 학생들이 조선대와 광주도심에서 2박3일동안 머물렀지만 우려했던 대규모 불상사는 발생치 않아 광주시민들은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한총련은 이번 출범식을 통해 공권력과 충돌을 피한다는당초「약속」을 깨뜨리고 또 학생운동권에서 말하는 이른바 스스로의「과오」를 저질렀다.
먼저 평화적 옥외집회에 대한 약속파기는 29일 마지막 행사에서 일어났다.「5월문제해결및 쌀수입개방 저지를 위한 시민.학생결의대회」를 끝낸뒤 가두행진을 벌이는 과정에서 광주아메리칸센터주변과 민자당사에 수백개의 계란을 던지고 투석 시위를 벌였던 것이다. 3만여명이 모인 학생운동권 최대의 행사라는 점에서 젊음의「한바탕 마당놀이」쯤으로 이해할 수도 있으나 어쨌든 약속을깬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진짜「과오」는 다른데 있었다.한총련은 사전검토와 정밀분석이 충분히 이뤄졌을 것으로 짐작되는 출범선언문을 통해『6.
25사변은 미제의 또다른 노예가 되어버린 이땅을 해방시키기 위한 조국해방전쟁』이라며『출범식을 미국반대.현정권타 도의 자랑찬성전』이라고 밝혀 스스로를 북한 선전기구쯤으로 격하시켜 버렸다.북한의 대남전략 노선을 액면 그대로 싣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총련은 비록 긴급수정을 통해 삭제했으나 최초 작성했던 선언문에선「반도 곳곳에 피로 물들인 전사들의 조국사랑의 일념,시뻘건 핏빛강물이 돼버린 낙동강을 등지고 눈물을 곱씹으며 돌아간 조국해방전사들의 투혼」등 학생운동권의 발상 이라고 하기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이때문에 경찰이 긴장하는등 상당한 파문이 예상되자 한총련의 고위간부는『한총련 선전국의 문안작성 과정에서 생긴 기술상.절차상의 우연한 실수』라며 변명(?)하고 출범식에서 이 부분을 슬그머니 삭제했다. 하지만 반민주.군사독재를 허물고 민주정부를 세우는데 큰 기여를 했던 선배들의 자랑스런 발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학생운동권조직이,지금은 공산주의를 내던져버린 종주국 러시아에서조차「남침」관련 역사자료가 쏟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북한의 주의.주장을 여과없이 수용하고 있는 것을 과연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시대감각에 뒤졌어도 한참 뒤진 자신들의 주의.주장을 올바로 수정하기 위한 아픔을 두려워해서는 안될 것이다.
[光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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