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 왜 이러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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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러고도 국회의원이 국민에게 낯을 들 수 있을까 싶은 일들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법의 핵심조항을 빼놓고 심의하다가 뒤늦게 삽입한 농안법 파동에 이어 이번에는 정당법을 개정하면서 「실수」를 함으로써 19명의 공직자들이 4개월이나 위법상태에 있었음이 들통났다.
그런가하면 상무대의혹을 국정조사하고 있는 국회 법사위의 일부 의원들이 술에 취해 회의에서 횡설수설하고 폭언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도대체 의원들의 정신상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고,국회의 입법과정이 이토록 허술한데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정당법 개정과 공직자들의 무더기 위법사태는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본래 개정의도와는 달리 차관급과 청와대 비서관 등의 의원자격 보유를 금지하는 내용으로 정당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통과된 후에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19명의 공직자가 넉달씩이나 당적을 가졌다는 것이 사태의 전말이다.
다시 말해 의원들은 자기들이 통과시키는 법의 내용도 모른채 통과시켰고,통과후에도 내용을 전혀 검토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국회의 법안처리과정은 그래도 해당상위의 소위심사→상위심사→본회의 등의 몇단계를 거치게 돼있는데 이런 여러단계에서 내용을 면밀히 살펴본 의원이 한사람이라도 있었던들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4개월이나 지난 후에야 법의 내용을 파악했다니 해외토픽의 웃음거리가 될 일이 아닌가.
농안법에 이은 정당법의 이런 어처구니없는 개정과정을 보면 다른 법들은 제대로 처리됐는지 염려가 안될 수 없다. 의원들이 내용도 모른채,검토도 없이 법을 통과시키는 것이 버릇처럼 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운 만큼 법제처나 국회는 전문인력을 동원해 최근 국회가 통과시킨 법률들을 한번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당은 이번 일을 「실수」로 설명하고,야당 역시 크게 문제삼지는 않고 있으나 그렇게 적당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입법에 임하는 의원들의 자세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고,국회·정부·정당할 것 없이 법을 존중하고 법을 지키려는 의식과 풍토의 확립이 시급하다.
그리고 법사위의 취중 추태도 그대로 넘겨서는 안된다.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국정조사를 하는 의원들이 조사대상자인 장관의 술대접을 받고 공식회의에서 추태를 보인 것은 의원품위나 국회위신을 생각할 때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자세로 국정조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고,그러니까 입법과정에서도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자꾸 벌어지는게 아닌가.
국회는 윤리위에서 이 문제를 다뤄야 하고 정당들도 추태를 보인 소속의원에 대해 응분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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