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먹한 관계」 두달만에 벗어날까/영수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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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씨 행보에 부담… 서로 필요성 느껴/딱부러진 합의 없었지만 “우호적”에 의미
김영삼대통령과 이기택 민주당 대표가 2개월보름만에 다시 만났다.
지난번 청와대 영수회담때 이 대표에 대한 「대접」이 문제가 돼 회담후 오히려 여야의 관계가 더 서먹서먹하게 된 것을 재조율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만든 것이다.
만남의 명분은 대통령의 러시아방문 건이다. 지난번 일본과 중국을 순방할 때 야당 대표가 공항에 나가지 않고 대신 극장을 간 사건이 여야 모두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두 영수의 만남의 필요성을 가속화시킨 것은 역시 김대중이라는 변수다. 김대중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의 활발해진 활동이 두사람 모두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섰기 때문이다.
이같은 배경위에서 이뤄진 이날 회담은 그런 만큼 「원만히」 진행됐고,상호협력을 강조하는 「의미있는」 회담으로 발표됐다.
○…김 대통령은 회담에서 예고한대로 북한의 심상치 않은 동태와 러시아방문 계획을 설명하고 이 대표의 협조를 요청했다.
김 대통령은 특히 북한의 ▲핵무기 개발 ▲휴전선 일대를 중심으로 한 군비증강 ▲부쩍 늘고 있는 군사훈련 ▲가속화되는 간첩활동 등을 열거하며 이해를 구했다.
김 대통령은 북한이 이런 상황인데 민주당이 주장하는 국가보안법 폐지는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지난해 이후 간첩활동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음에도 검거실적이 전무한 사실을 설명하면서 협조를 거듭 당부했다.
별다른 경제적 이익을 기대할 수 없음에도 러시아방문을 추진해야 하는 속사정도 바로 이런 때문이라는 점을 역설했다.
다만 이 대표가 요구한 ▲상무대 국정조사 협조 ▲조계사 폭력 진상규명 및 관계자 문책 ▲양심수 사면·복권 등에 대해서는 최대한 협력토록 지시하고,국회가 필요한 논의를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현안에 대한 딱 부러진 합의는 없었다.
그럼에도 지난 3월의 회담 때와는 달리 우호적인 내용으로 발표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 대통령으로서는 가뜩이나 뒤숭숭한 국내 정정을 어느 정도 평정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고,이를 위해서는 이 대표의 협력이 필요했다.
이 대표로서는 김 이사장의 그늘에서 고용대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데다 총무경선에서마저 패퇴한 마당에 김 대통령의 지원과 협조가 필요했을 것이다.
○…27일 여야 영수회담은 김 대통령이 러시아방문과 북한핵을 포함한 북한문제 등 대외문제를 설명하고,이 대표는 상무대 비리국정 조사문제 등 주로 국내 정치현안에 관한 대통령의 협조를 요청하는 형태로 진행했다.
이 대표는 회담 첫머리에서 『개혁정책이 방향을 잃으면 비판과 견제를 하겠지만 바른 방향으로 추진된다면 적극 돕겠다』는 덕담성 발언으로 운을 뗐다.
이 대표측이 이날 회담의 성패를 가름할 지렛대로 보는 것은 상무대 국정조사와 관련한 대통령의 약속부분이다.
회담에서 이 대표가 김 이사장 몫으로 배정한 대목은 김 이사장의 동교동 자택 사찰문제와 통일된 부분.
이 대표는 『김 이사장의 자택 사찰문제에 대해 대통령의 전향적인 입장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김 대통령이 최근 『연방제 통일론 등 환상적 통일론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 부분과 『남북 예멘 사태로 성급한 통일론의 위험성이 드러났다』고 한 대목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김 이사장의 지론이자 민주당의 당론인 3단계 통일방안을 설명하고 『예멘사태는 민주당의 통일론이 옮음을 입증한다』고 설명하고 『누구도 연방제 통일방안을 얘기한 적이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김 이사장을 감싸고 나선 것은 영수회담에 대한 당내 동교동측의 「김 대통령과 이 대표가 합작해 김 이사장을 흠집내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식시키고 김 이사장측의 섭섭한 감정을 해소시키려는 의도 때문이다.
이날 회담은 지난 3월11일 영수회담에서의 「수모」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여러 안전장치가 마련됐다.
청와대와 민주당 대변인의 공동발표라는 형식이나,좌석배치도 김 대통령이 상석에 앉는 것이 아니라 마주 대좌하게 된 예우를 받았다.<김현일·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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