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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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더 먼 곳을 향하여(40)길남이 막장 붕괴사고 소식을 들은 것은 저녁무렵 갱에서 나와서였다.9번 갱에서 사고가 있었는데 여섯 명 가운데 넷은 무사히 탈출했고 두 명이 실종됐다는 소식이었다.
잊을만하면 일어나곤 하던 사고들이었다.갱이 무너지거나 버팀목이 쓰러져 사람이 다치는 일만이 아니었다.캐낸 탄을 실어나르는운반차에 치여 다리를 잘라야 하는 일도 드물지 않게 있어 왔기에 길남은 남의 일처럼 그 소식을 들었다.
네 명이나 살아 나왔으면 별 거 아니었군 그래.바다에 붉게 황혼이 물드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는 세면장으로 가 몸을 씻었다. 수도 꼭지 아래 벌거벗은 몸을 맡기고 서서 발밑으로 흘러내리는 검정 탄가루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였다.몸에 비누칠을 하면서 옆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죽었는지 살았는지야 모르지만,일단 두 명이 빠져 나오질 못했다던데.』 『막장이 무너졌다던 거 같던데,그랬으면 죽었지 무슨 용빼는 재주 있다고 살았겠어.』 『모르지.일단 구조대가 파들어 가고는 있나 봐.』 『두 사람이라,둘이 죽었으면 어쨌든 두 자리 비는 거니까 잠자리가 쪼끔은 넓어지겠구나.』 세면장을나와 길남이 젖은 머리를 털며 숙사로 돌아오다가 바라본 저녁 하늘에는 오늘따라 해가 졌는데도 진홍빛 놀이 서쪽 하늘에 퍼져있었다.바람 한점 없는 바다도 잠잠했고 어두워지는 하늘에는 흩뿌리듯 널려 있는 구름이 한가로웠다.
저녁먹기를 기다리며 숙사 앞에서 서성거리는 그에게 다가와 어깨를 친 건 박씨였다.
『아니,너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 『이러고 있다니,제가 뭘 어쨌는데요?』 『이런 변을 봤나.아니 너 몰랐어?』 『뭘요?』 갑자기 박씨가 말을 더듬었다.
『너,임마,명국이,사고 난 게 바로,명국이 그 사람이야.』 길남의 얼굴이 꺼멓게 질린다.
『네? 아저씨가요?』 『그래,임마.네가 이러고 있을 때냐?』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길남은 방파제 밑을 달렸다.막장으로 향하는 어둠침침한 터널로 들어서며 길남은 이를 악물고 있었다.9번 갱이라고 했지.어쩌다가 하필,이게 무슨 까무러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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