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랑>개발이 삼켜버린 고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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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내 고향 春川을 한글로 풀어보면「봄내」다.무심하게 넘겼던 고향이름을 곰곰 생각하게 되는 것도 나이가 먹는 징후이리라.누구에게나 고향에 대한 어릴적 추억은 각별한 바가 있다.특히 춘천의 상징인 소양강의 존재는 항상 그리움의 대상으로 떠오른다.
6.25후엔 어디나 그랬겠지만 춘천도 물사정이 나빴다.공동수도에서 먹을 물만 배급타듯이 길어다 먹고 일요일이면 빨랫감을 갖고 소양강으로 갔다.봄부터 가을까지 그곳은 빨래터이자 놀이터였다.수정같이 맑은 물에 빨래를 빨아 새하얀 모래 밭에 널어놓고 삶을 빨래는 빨래 삶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에게 맡긴뒤준비해간 점심을 먹거나 떡이나 김밥을 사먹었다.
그러고는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새파란 하늘에 떠가는 흰구름을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맨발에 닿는 모래의 감촉이 좋아 끝없이강변을 걸었다.그 맑은 물,푸른 하늘,하얀 모래의 소양강은 춘천의 또 하나의 상징인 봉의산과 함께 늘 떠오르 는 고향산천이다. 이 봄,그곳에 남아 고향을 지키며 사는 친구에게 소양강에가보고 싶다고 했더니 강변에 새로 지은 멋진 서양식 레스토랑으로 안내하는 것이었다.2층의 전망좋은 방에서 포근한 의자에 앉아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며 바라본 소양강은 영화속의 한 장면같은 낯선 호수일 따름이었다.
시멘트로 발라버린 강변은 나의 접근을 완강히 거부하는듯 싶었다.개발이란 미명하에 전국토가 이런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못견딜 일은 그 물에 손을 담글 수도 없고 간지럽다며 밟을 모래밭도 없다는 것이었다.고향은 추억속에서나 존재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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