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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좋은가/중학생들 사이에 당구 열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업소는 성인중심 어른흉내 부추겨/담배 피고 내기하는건 보통/건전한 환경조성 “발등의 불”
24일 오후 4시 서울 구로구 구로동 K중학교 부근 R당구장. 수업을 마친 20여명의 중학생들이 책가방을 메고 교복을 입은채 4개의 당구대 주위에 삼삼오오 몰려 당구에 열중하고 있다.
『야,시끼로 빨아』 『우라로 돌려.』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 학생들사이에 언뜻 알아듣기도 어려운 일본말 섞인 당구용어가 오간다. 『학생들의 수업이 끝나는 오후 4시쯤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라는 당구장 주인 천모씨(37)의 귀띔. 이 학교 주변에는 R당구장 외에도 2백여m 거리안에 S,K,C당구장 등이 몰려 중학생 손님들을 상대로 성업중이다.
휴일인 22일 오후 2시 서울 성북구 돈암동 성신여대입구 E당구장도 마찬가지. 사복차림으로 친구 2명과 함께 당구를 치던 유모군(15·D중 3)은 『중학교 1학년때는 한반에 4∼5명,중2는 20여명,중3때는 한반 50여명중 30명 이상이 당구를 치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가 「18세미만 청소년의 당구장 출입금지」 조항(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시행규칙 5조)을 위헌으로 판정한 이후 중학생사이에 이처럼 「당구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당구 자체는 건전한 스포츠로서 흠잡을데가 없다고 보는 의견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미성년인 중학생들이 마구잡이로 출입하는 당구장 환경은 아직 성인중심이고 분위기도 어린 학생들이 드나들기엔 적합하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더구나 일부학생들은 공공연한 흡연은 물론 어른 흉내를 내며 내기당구를 하는 등 탈선장소가 되고 있어 「중학생들의 당구장 출입,이대로 좋은가」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T당구장은 아예 20여명의 중·고생들이 독차지,벽에 붙은 전나의 여자사진을 흘끔거리며 당구에 열중이고,소파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학생들은 태연히 흡연을 즐겨 실내가 담배연기로 자욱했다.
이같은 폐단때문에 법적으론 중학생들의 당구장 출입이 가능해졌지만 대부분의 중학교에선 교칙으로 당구장 출입을 금하고 있다.
서울 남강중학교 전광득 학생주임(47)은 『생각보다 학생들의 당구장 출입이 잦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구장은 성인오락실이고 학생들에게 유해하기 때문에 출입학생들을 단속하고 있지만 손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 박성일씨(36·서울 노원구 상계동)는 『학생들을 술집에 못가게 하고 성인영화를 보여주지 않는건 판단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유해한 환경에서 가급적 떼어놓으려는 것』이라며 『현재처럼 무방비 상태인 당구장 출입문제는 근본적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구가 건전한 레저이고 중학생들의 당구장 출입을 인위적으로 막을수 없다면 이들이 마음놓고 이용할 수 있는 시절·환경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주재훈·유상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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