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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벤치마킹하는 중남미 국가 도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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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50여 년 전 한국은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최빈국이었다. 경제규모는 필리핀· 방글라데시·루마니아보다 낮은 세계 37위였다.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76위로 알바니아·모잠비크·예멘과 비슷한 1000달러에 불과했다. 당시 콜롬비아의 국민소득은 한국의 2배, 아르헨티나는 5배, 베네수엘라는 8배 이상이었다. 그러나 그 후 두 세대에 걸쳐 일어난 일은 기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수백만 국민의 땀과 노력으로 한국 경제가 달라진 것이다.

 오늘날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이 1조2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뉴질랜드·그리스와 같은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 이제 한국 국민은 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 국민의 2배, 콜롬비아 국민의 3배 이상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다. 또한 포브스지의 세계 2000대 기업 리스트에는 시가총액 1000억 달러에 이르는 삼성과 LG·현대·대우 등 세계적으로 알려진 52개 한국 기업이 당당히 올라 있다.

 최근 중남미와 카리브해 연안 국가 역시 제2의 경제부흥기를 경험하고 있다. 1990년대의 경제개혁 노력이 서서히 열매를 맺고 상품가격 상승과 금융시장 호조로 경기가 회복됐다. 그리고 지난 5년간 낮은 인플레이션과 경상수지 흑자로 연간 5%씩 성장하고 있다. 경제발전과 함께 혁신적 사회제도를 운영해 중남미의 빈곤도 크게 감소했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의 최근 기사에 따르면 2002~2006년 중남미 인구의 10%에 달하는 1500만 명이 빈곤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실제로 브라질·멕시코의 경우 빈곤층의 소득수준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라면 2010년에는 중남미 인구 대다수가 중산층에 진입해 21세기형 소비자계층으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 시기는 중남미 국가 발전의 전환기가 될 것이다.

 중남미 국가들은 지난 5년간의 경제성과를 더욱 견고히 하고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우수한 교육시스템, 최첨단 기술력, 활발한 대외수출 및 대내투자를 기반으로 고성장을 이룬 한국 사례를 주목하고 있다. 향후 중남미 발전의 방향과 교훈을 얻고, 상호 활발한 무역·투자를 촉진하기 위해서다. 중남미와 한국 간 무역은 90년 이후 10% 이상씩 성장했다. 삼성·LG·대우 등 한국 기업도 멕시코시티를 비롯한 중남미 각지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원활한 교류와 시장접근을 확대할 수 있는 여지는 크게 남아 있다. 미주개발은행(IDB)은 한국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120명이 넘는 중남미 기업인과 무역투자 관계자를 17~18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한-중남미 무역·투자포럼에 참가하도록 했다. 2003년 체결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처럼 이번 행사를 통해 21세기 한국과 중남미 경제협력을 위한 새로운 장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엘베르토 모레노 미주개발은행(IDB) 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