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더 먼 곳을 향하여(33)『자네 무슨 말이 그렇게 좋은가.여기서 우리같이 시래기 뭐 만도 못한 것들 하고 노닥거릴 일이 아니여.어서 조선으로 들어가도 들어가야지.
변호사를 해도 조선 가서 해야 할 거 아니여.』 『키 크고 싱겁지 않은 사람 없다더니,아저씨는 왜 또 이러세요.뭐 저하고 살풀 일 있으세요?』 『아이구.그런 소리 말어.나는 말일세,나는 그냥 처억 늘어진 황소 불알,그거나 언제 떨어지면 구워먹으려고 장작 지고 다니는 사람 아니던가.』 태수가 외면을 하면서칵칵거리며 목에서 가래를 돋워냈다.광택이가 고개를 돌려 명국을보며 이맛살을 찌푸린채 물었다.
『그나저나 그럼 끌려가서 맞아죽었는데도 결국 일나갔다가 죽은걸로 되는 건가요?』 『우리가 무슨 힘이 있나,법이 있나.』 태수가 또 말을 받았다.
『내 절 부처는 내가 위해야 한다는 말도 있는데 우리 조선사람들이 이런 때에도 마음들이 제각각이니 뭐가 되는 일이 있겠어.』 집안이 망하려면 맏며느리가 수염이 난다더니 이거야,오늘은아주 까마귀 고기 먹은 날일세.생각같아서는 옆에 있는 곡괭이라도 들어 태수를 내려치고 싶은 걸 참으며 명국이 일어섰다.곡괭이를 잡으며 그는 손바닥에 침을 뱉었다.
『일어들 나.기무라 눈썹 꿈틀거리는 거 보느니 한삽이라도 더뜨는 게 낫지.』 기무라는 하루의 채탄량을 조에 따라 계산을 하는 저탄장 관리였다.그는 눈썹이 어찌나 검고 길던지,저 사람은 눈썹을 달고 다니는 거여 송충이를 얹고 다니는 거여 하는 소리를 인부들에게 들었다.성질이 불같아서 다른 조에 비해 채탄량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우선 눈썹부터 꿈틀거리는 사람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한 차례 일을 하고 난 뒤끝이라 어깨들이 결리고 몸이 어느새 휘어든다.
『그 사람은 눈썹도 빗질해야 할 사람 아닌가요.』 광택이가 따라 일어서며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윤씨가 질색을 한다.
『아 어디다 엉덩이를 털어.여기 내 콧구멍 있다는 소리 못 들었어.』 그때였다.벽을 버티고 있는 갱목 사이로 푸스스스 흙이 떨어져내렸다.여섯 사람의 눈이 화살처럼 그쪽으로 가 박혔다.이어서 천장 쪽 갱목이 뿌드득거리는 소리를 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