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 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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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근데 성자는 쉬만 하고 간 게 아니래.』 『그럼 뭐야… 빨리 빨리 말해봐 짜샤.』 『성자가 거기서 무슨 이상한 짓을 했다 이거니.』 『변소에서 쉬 아니면 뭐겠니 쪼다야.』 『어휴 지저분한 새끼들….』 승규와 영석이는 계속해서,누구는 무슨 색의 팬티를 입고 있었다느니 누구는 털이 하나도 없었다느니 어쩌구 해가면서 주워들은 소문들을 마구 떠벌렸다.듣기에도 그리 신빙성이 높은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지만,어쨌든 기도실 안의 우리를 들 뜨게 만들기에는 충분한 뉴스였다.
『가만 있어봐,이러구 있을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직접 보구와서 실감나게 이야기해줄게.야 도깨비가 오면 나 변소 갔다구 그래.정말 변소에 가는 건 가는 거니까 히히.』 상원이였다.녀석이 서둘러 기도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승규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하고 만류했다.
『야 이 병신아,지금 가면 뭐하냐구.손님이 있어야 뭘 볼 거아니니.』 『어 정말 그러네.그럼 이거… 앞으로도 세시간은 더기다려야 하잖아.』 도깨비에게 또 시말선지 반성문인지를 내고,악동들과 함께 교문을 빠져나와 그린하우스로 향하면서 나는 사실벌써부터 가슴이 쿵쾅거렸다.다른 녀석들은 모두 아무렇지도 않은표정이었다.나도 쪽 팔리기가 싫어서 일부러 휘파람을 불면서 걸었 다. 방과후의 그린하우스는 언제나처럼 붐볐다.고3은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아서 우리가 꿀릴 상대는 없었다.우리는 1학년남자놈들을 몰아내고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여기저기에 앉아 있던 우리학년 계집애들이 우리가 들어서는 걸보고 픽픽 고개를 돌리고는 자기들끼리 쑥덕쑥덕대는 게 보였다.
계집애들은 우리를 재수없어 하는 내색을 더 노골적으로 표시할수록 자기가 그만큼 더 잘난 게 되는 줄 아는 모 양이었다.
『쟤들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애들이 그저 잘난 척만 하고 있네.하여간 화장실에만 다녀와보시라구.』 영석이가 아주 점잖게 말하는 게 웃겨서 다같이 낄낄거렸다.
떡볶이와 쫄면을 시켜놓고,영석이와 승규가 선발대로 뒷마당의 화장실로 나갔다.선발대는 주문한 게 나왔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나는 떡볶이를 집어먹으면서도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는데,상원이도 별 말이 없는 걸로 봐서 나하고 비슷한 심 정인가 보았다.3반의 미정이가 화장실로 가는 게 보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약간 떨리기까지 했다.소문이 사실이라면 나는 생전 처음으로 여자의 거기를 보게 되는 셈이었다.이거야말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사진이나 비디오 테이프가 아니라 실물로.그것도 매일 얼굴을 맞대는 우리학교 여자애들 걸 .그것도 화장실에서 일보는 장면을 말이다.
『이것들 왜 안오지.걸렸나…?』 상원이가 그러는데 승규와 영석이가 나타났다.
나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나서,선발대가 자리에 앉자마자 속삭였다.
『…봤어?… 진짜야?』 녀석들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고개를 끄떡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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