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여성>은행여직원 직무구분 또다른 性차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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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여행원」에서 행원으로,그리고 다시 사무직행원으로.금융계의 뿌리깊은 남녀 성차별 인사제도였던 「여행원」으로 86년 외환은행에 입사했다 이 제도가 92년12월 철폐됨에 따라 남녀 구분없는 행원으로 전환된 南은숙씨(27)는 최근 인사 제도 개편 얘기가 나돈 후부터 심사가 편치않다.
『행원전환에 따라 입행경력이 같은 남자에 비해 1년6개월(2만여원)깎여 호봉조정이 됐어요.작년 가을엔 입행경력이 3년 늦은 남자행원에 밀려 계장승진에서 탈락했구요.그런데 앞으로는 사실상 성별구분이 확연한 종합직과 사무직으로 직무를 구분하고 승진.봉급에 차이를 두겠다니 말이나 됩니까.』여행원제도는 사라졌지만 남녀차별이 일터 곳곳에 남아있는 상태에서 新인사제도라는 이름으로 「제2의 여행원제도」가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반복적인 업무직에는 보수는 올려 주되 승진에 제한을 두고복잡하고 기획능력이 요구되는 업무직엔 승진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직무구분인데 91년부터 보람.하나등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으며 타은행으로 확대추세에 있다.
제일은행 모지점에서 근무하는 金모씨(33)는 『변변한 업무교육조차 받지 못했던 여행원들이 행원으로 전환되었어도 남자들과 같은 출발선상에서 경쟁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며 『여행원제 폐지이후 2년도 안돼 일반직과 사무직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는건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즉 현실적으로는 사무직과 일반직의 선택이 업무내용보다는 숙직 또는 당직 가능여부,격지근무 가능여부와 같은 근무환경에 좌우되고 있기 때문이다.
승진의 제한(2급과장까지),승급액의 차이(일반직의 절반)를 두는 사무직과 일반직으로 직군을 구분한 신한은행은 93년6월까지 두차례에 걸쳐 자유의사에 따라 직군을 선택하게 했다.그 결과 남자행원의 99.7%가 일반직을 선택했고 여자 행원의 81.7%가 사무직을 선택,우려하던 성별 업무분화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사무직에 지원해 무역금융업무를 맡고 있는 柳모씨(28)는 『서울에 지점이 많아 지방발령이 날 확률은 작았지만 남편과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원거리 배치부담을 안고 일반직을 선택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여성행원이 처한 현실적인 제약은 93년7월 종합직(일반직에 해당)으로 전환한 1백여명의 여자행원 중에서 30명 정도가 격지근무를 견디다 못해 일반직(사무직에 해당)으로 다시 돌아온 한국은행의 경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국책.시중.지방은행 33개중 통계로 잡힌 18개은행에서 근무하는 여자행원수는 3만6천여명이며 그중 3급(과장)이상은 작년말 현재 0.1%인 50명정도.신인사제도의 폭풍이 은행권에 몰아쳐 여자행원들이 대부분 사무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 여성인력 활용및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개개은행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낭비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단순 반복적인 업무는 사실상 사무자동화가 진전되고 파트타이머(시간제근로자)채용이 확대되면 사무직여자행원의 손을 떠나게 된다.육아및 가사 부담등 현실적 제약에 묶여있어 사무직으로 선택을 강요받는 여자행원들은 그래서 미래에 대한 불안 감을 털어낼수 없는 것이다.
〈康弘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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