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일자리 만들기의 바른 방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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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소련 헌법에는 근로의 양면원칙(twin principles of work)이 존재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일하지 않는 자는 기생충, 범죄자다. 따라서 모든 국민은 일할 사회적 의무를 가진다는 것이 이 원칙의 전면이다. 그런데 국민은 일자리가 있어야 일할 수 있다. 이에 국민의 일할 권리는 국가가 보장한다는 것이 후면의 원칙이다.

이에 따라 일자리를 못 찾는 새 노동 참여자의 직장은 소련 정부가 마련해 주었다. 해고당하는 직원의 일자리는 그를 해고한 직장이 찾아줘야 했다. 이렇게 해서 소련은 인력이 필요하건 말건 모두가 고용되는 완전고용의 국가체제를 자랑했다. 물론 시장지향의 개혁과 개방 이후 이들은 모두 일자리를 잃었다.

몰락한 사회주의체제의 이런 제도와 시책이 오늘 우리 정부의 일자리 창출 구도에 답습되는 모습은 없는가. 어제 정부는 사기업이 상근근로자를 한명 신규 채용할 때마다 향후 3년간 1백만원의 세금공제를 해주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산하 공기업들도 다음달부터 대규모 신입사원 채용에 나서기로 했다. 경제부총리는 예절강사.문화재 설명요원.기타 공무원을 지난해보다 8만여명 더 채용하겠다고 했다. 열린우리당 대표는 공기업의 채용 증대안을 국회에 제안하겠다며 "야당도 정쟁을 중단하고 일자리 만들기에 동참하라"고 외쳤다.

정부가 일자리 만들기만을 기도한다면 어려울 것이 무엇인가. 공기업의 고용 확대를 입법화하고, 외국기업의 인턴사원 채용비용을 국가가 전액 부담하고, 사기업에는 일자리 나누기를 의무화시키자. 아예 세금을 올리고 공채를 발행해 예산을 늘려 정부가 다 채용하자. 이런 시책이면 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은 곧 바닥을 기고 국가 경제는 거덜날 것이다. 그때는 자연히 모든 대외관계가 폐쇄되고 국가가 총관리하는 경제체제가 될 것이다.

대통령이 새해 벽두에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정책순위로 잡은 것은 실로 올바른 출발이다. 그러나 결실도 말처럼 쉬울 수는 없다. 경제에 대한 몰이해와 정치적 목적을 앞세운 방법 선택은 오히려 재난만 초래할 것이니 가장 경계할 대상이 된다.

먼저 정부의 '일자리 만들기'는 이름부터 바꿔야 할 발상이다. 일자리나 경기는 정부가 계획해서 찍어낼 수 없다. 지난 DJ정권은 '경기 만들기'를 도모해 신용카드를 남발했다. 내수경기는 당장 진작됐고 DJ를 승계한 노무현 정권 탄생에도 도움이 됐다. 그러나 1년이 안 된 오늘 실업사태가 이어지고 4백만명의 신용불량자는 언제까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아끌지 모를 물귀신이 됐다. 이런 정책의 대가는 항상 국민 개개인이 세금과 실업으로 치르고 그 주범은 사라진다.

정부 고용대책의 첫 장은 '일자리는 오직 시장에서 발생된다'는 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강요하면 기업은 비정규직을 뽑지 않는다. 여성근로자를 과보호하면 여성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헐값의 임시직 인턴사원을 증대시키면 정식사원을 채용하지 않는다. 해고 없이는 고용도 없다(no fire, no hire). 해고를 못하게 할수록 더 많은 실업자가 생기는 것이 바로 고용의 역리(逆理)다.

오늘날의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이나 대통령이 기업총수에게 투자를 부탁하는 일 따위는 주 실업대책이 될 수 없다. 고용이나 투자는 기업에 부탁하고 협상할 일이 아니다. 기업은 오직 수익 있게 사업하고 이익이 남으면 투자하고 더 필요한 인력을 채용할 뿐이다. 일부러 일자리를 만들든, 사회봉사를 하든 경쟁 이외에 다른 생각을 하는 기업은 결국 망하고 더 많은 해고자를 초래하는 것이 시장원리다.

일자리에 관해 현 정부에 거는 최선의 기대는 그 자연생성 과정을 파괴하지 말라는 것이다. 범법자는 엄정히 다스리고 친노적 중재행위를 중단하고,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언행으로 불확실한 시장상황을 되풀이말라는 것이다. 기왕에 대통령이 "불법행동은 법과 원칙으로 단호하게 대처해 나갈 것"을 다짐했으니 때에 이르러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신뢰회복의 열쇠가 될 것이다.

김영봉 중앙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