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몽골 출신 '요코즈나' 등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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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스모(相撲)는 일본의 국기(國技)다. 일본서기에도 언급돼 있을 정도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스모에 대해 일본인들은 '신성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이 스모에서 가장 높은 계급이 요코즈나(橫綱)다. 신성한 국기의 최강자뻘이니 일본 사회는 요코즈나를 존경해 마지 않는다.

지금 일본에는 몽골 출신 23세 젊은이가 유일한 요코즈나가 됐다. 그런데 이달 초 아사쇼류(朝靑龍)란 이름의 이 몽골 역사(力士)를 둘러싸고 언론과 스모협회가 꽤나 시끌벅적했다. 감기를 이유로 예정됐던 신년 공개훈련에 불참한다든지, 씨름판 위에서 점잖아야 하는 요코즈나에 어울리지 않게 호들갑을 떨었다는 등의 이유로 "품격이 떨어진다"며 맹비난을 가한 것이다.

요코즈나 심의위원회의 일부 위원들은 "품행에 문제가 있는 만큼 은퇴권고를 해야 한다"고 나섰고, 일부 언론들은 "아사쇼류가 격투기쪽으로 전향하기로 결심을 굳혔다"는 루머를 퍼뜨리며 이를 기정사실화하려고까지 했다. 그런데 지난 11일부터 25일까지 계속된 올해 첫 스모대회에서 아사쇼류가 8년만의 기록인 15전 전승으로 우승하자 여론은 1백80도 바뀌었다. 격투기 진출 이야기는 쏙 들어갔고 신문과 방송마다 아사쇼류 예찬에 여념이 없다.

대회가 끝난 다음날인 26일자 주요 일간지 조간에는 '유일 요코즈나… 감도는 품격' 같은 제목이 큼지막하게 실렸고 "당분간 그와 맞먹는 역사는 나오기 힘들다" 등의 기사가 이어졌다.

이 같은 일련의 흐름은 일본 사회가 얼마나 '강자'에게 약한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아사쇼류의 예뿐 아니다. 한국 기업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던 일본 사회가 삼성전자 등 일본에 진출한 기업들의 성장에 혀를 내두르며 연일 극찬하는 특집기사를 내보내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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