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평>권력 나눔의 정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대통령제냐,내각책임제냐」-.
권력구조에 관한 이 고전적 주제를 놓고 지난 90년,美國의 한 학술지(Journal of Democracy)를 통해 세 명의 저명한 학자들이 서로 공박을 벌였다.
논쟁을 불러일으킨 첫번째 論者는 이렇게 주장한다.대통령제는 勝者獨食의 경직된 제도다.때문에 兩極化된 사회에서 안정된 민주정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권력의 共有가 가능한 내각책임제가 더 바람직하다.
여기에 대한 反論은 이렇다.그같은 주장은 라틴 아메리카의 경험에 한정된 것이다.대통령제를 취하더라도 선거제도에 따라서는 권력의 공유가 가능하다.분열된 사회에서 대통령제의 적극적 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
한편 제3의 입장에서는 이같은 두 견해의 한계를 지적한다.근본적으로 문화적 요인들이 민주정치의 成敗를 가름한다는 것이다.
이 논쟁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갈등하는 세력 사이의 權力共有를 가능케 하는 제도만이 안정된 민주정치를 가져올 수 있다고보는 점에서는 異論이 없다는 점이다.
이같은 관점은 우리에게는 그렇게 익숙지 않다.권력의 공유는 곧 정치不安을 가져오고,권력의 독점만이 安定을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이 종래 우리 사회에서 通念처럼 되어 왔기 때문이다.이런 視角차이의 밑바닥에는 타협적 정치문화의 가능성 에 대한 相反된 관념이 깔려있지 않은가 여겨진다.아무튼 정부형태 논란은 쉽게 판가름나기 어려울 것임을 이 논쟁을 통해서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엊그제 대통령자문기구인「21세기위원회」보고서에서 改憲論이 제기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우리사회에서 개헌론은 그 자체가 곧주목의 대상이 된다.그럴만큼 우리의 권력투쟁사는 곧 개헌론과 직결되어 왔다.그런 점에서 청와대측이 즉각 改憲 추진 의사가 없음을 재천명한 것은 적절한 대응으로 보인다.지금의 우리 상황이 개헌을 거론할 계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南北韓통일 상황에 대비해 前向的으로 권력구조 문제를 검토하는 작업은 필요할 것이다.獨逸의 例에서 보는 것처럼 갑작스레 통일이 실현될 경우 먼저 부닥칠 문제는 남북한 주민 사이의 여러 갈등일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할 때 통일한국에서의 정치.사회적 갈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치체제가 어떤 것인지 미리 미리 면밀히연구해두지 않으면 안된다.대립된 사회에서의 갈등을 제도적으로 흡수,완화할 수 있는 권력구조가 무엇인지에 대해 서는 여러 방안들이 검토될 수 있지만 그 요체는 權力의 共有.分有를 가능케하는 제도에 있을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유의하지 않으면 안될 것은 갑자기 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거기에 맞는 운영이 뒤따르지는 못한다는 점이다.그런 점에서 통일 상황이 도래하기 전 미리 권력 공유의 국정운영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함께 나누는 방식의 국정운영은 반드시 통일에 대비해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광범하고 가속적인 사회分化현상이 전개돼가는 오늘의 상황에서 권력의 중앙, 꼭대기에서 국정의 전부를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때문에 국정의 효율을 높인다는 점에서도 권력分有의 국정운영이필요하다.
***1人 추종 탈피해야 다행스럽다고 할까,지금의 우리 헌법에는 이미 권력의 나눔을 가능케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이런 장치를 활용해 대통령은 國政의 커다란 기본틀과 방향을잡아주고 나머지 부분은 총리와 행정 各部에 맡기는 새로운 시도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이 점에서 보면 지난번 李會昌총리 경질사건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라고 언제까지 1人 추종의 後進的 정치문화에 머무를 수는없다. 1人정부가 곧 강한 정부는 아니다.힘을 모으는 것이 대통령의 리더십이다.
〈漢陽大교수.헌법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