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스님(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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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요즘같이 화창한 봄날,통도사·해인사·범어사에서 온 승려 세사람이 가재를 잡으러 개울가로 나섰다. 먼저 개울가로 나서 팔을 걷어붙이고 큰 바위를 번쩍 든게 통도사 스님,그 다음 바위 밑에 쌓여있는 가랑잎을 조심스레 치우는게 해인사 스님이었고,지금껏 뒤짐지고 있던 범어사 스님이 난짝 가재를 집어들었다. 통도사의 우직함과 해인사의 합리성과 범어사의 민첩함을 설명하는 일화다.
통도사 문중은 우직함과 아울러 송광·백양 문중과 함께 소수파에 속한다. 조계종 큰 문중이라면 역시 범어 문중과 월자 문중이다. 해인·범어사 중심의 범어 문중은 동산스님에서 성철스님에 이르는 큰 인맥을 형성하고,월자 문중은 수덕사 중심의 경허·만공같은 고승에서 월산·월주·월탄에 이르는 월자 돌림 스님을 속속 배출했다. 그러나 이번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된 월하스님은 좁은 의미의 월자 문중이 아니다. 당대 서예가였던 구하스님·경봉스님 필맥을 잇는 통도사 방장이다. 범어 문중도 아니고 월자 문중도 아닌 소수 문중에서 종정이 추대되었다는 사실이 개혁적 의미를 내포한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위세를 자랑했던 유신시절 이후락 정보부장이 불교신도회 회장을 맡아 원로스님들을 한자리에 모아 일장 훈시를 했다. 이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게 월하스님이다. 통도사 가풍의 우직함과 대쪽가큰 고집을 그대로 월하스님이 대변하고 실천한다는게 최근 그를 만난 사람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일일불작이면 일일불식이라 해서 8순의 방장이 매일 호미를 들고 밭을 매며 출타시엔 반드시 버스를 타는 근검함을 실행하고 있다.
해인사가 경전을 중시하는 법보사찰이고 송광사가 승려교육에 치중하는 승보사찰이면 통도사는 참선과 수행을 중시하는 불보사찰이다. 늙은 승려도 한낱 수행승려일뿐 참선과 수행을 몸소 실천하는 수행승의 길을 걷자는게 통도사의 가풍이다. 밭을 가는 일이나 먹을 가는 일 모두가 수도요,수행이다. 그래서 통도사는 전통적으로 서예가 강하다.
월하스님의 종정 추대를 보면서 우리는 통도사 수행승 가풍이 조계종단의 새 바람이 되기를 기대한다. 바위같은 우직과 고집으로 불교 본래 수행승으로서의 진면목을 보일 때 그동안 실추된 조계종단의 권위도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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