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각>한국국적 포기 기로에 선 대만교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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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韓.臺灣 단교가 3개월후면 2년이 되는 요즈음 대만 교민들은힘이 없다.그처럼 돈독하던 양국간 우호적인 분위기가 단교의 충격과 함께 미움으로 바뀌면서 각종 불이익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단교전 확정된 대만내 외국인에 대한 취업제한 조치가 아직까지 풀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때 비공식적이나마 개선의 여지를 보여주던 두나라의 관계는 전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한 탓인지 요즘 타이베이의 한국대표부에는한국 국적 포기를 신청하는 교민이 늘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초까지 국적포기를 신청한 사례는 모두 47건으로 단교가 이루어진 92년의 23건에 비해 두배이상 늘어났다.
한국 국적으로 버티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현상을 대변해 주고있다. 대만과의 단교 이후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이곳에초기 정착한 교민들이다.이들은 우선 92년초 제정된 대만내 외국인 취업법에 따라 대만당국이 발급하는「工作證」없이는 마음대로취업이 불가능하다.
문제의「공작증」은 특수자격을 소지한 외국인에 한해서만 발급되는 것이다.대부분 漁民으로 臺灣으로 흘러들어와 법적보장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교민 1세들과 이들의 신분을 대물림한 2,3세 교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대만사람이 경영하는 안정된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다 단교후 해고됐습니다.그후 택시기사.음식점 종업원등 안해본 게 별로 없습니다.하지만 매번 몇달 일하지 못하고 해고당했습니다.이제는 생계조차 막막합니다.』 역시「공작증」을 받지 못해 가까스로 한국인식당에 취직한 부인이 벌어오는 적은 수입으로 겨우 입에 풀칠하고 있다는 한 40대 교포의 하소연이다.
대만당국은 한국거주 華僑들의 입장을 감안,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해 한국교민들의 상황에 대한 특례조항을 설치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행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이 결실을 보려면 대만국회의 결의를 거쳐야 하는데 단교이후 대만에 퍼지고 있는 反韓감정을 고려하면 그것도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어서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교민들에게는 까마득한 얘기다.
***□… 母國배려 절실 …□ 『대만당국은「임시공작증」을 발급하는 방법도 검토하고 있다지만 요즈음엔 오히려 시간만 끄는듯합니다.그러니 우리 국적을 포기하는 교민이 늘어날 수밖에 없을것같습니다.』대만 한인교민회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교민들이 국적포기를 고려하는 이유는 취업문제만은 아니다.대만에 뿌리박고 살아야 할 교민들로서는 단교이후 전혀 개선 조짐을보이지 않는 韓.대만 관계의 어두운 전망이 한국국적을 포기하려는 더 큰 이유인 것이다.
자랑스런 한국인으로서 긍지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온 1천여대만교민들을 격려하는 뜻에서라도 당국은 韓.대만 관계개선을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보여 줘야 할 때인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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