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부 북한 핵처리 갈등/국방 국무 “제재” “대화”싸고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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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화 끝났다”… 페리등 강경목소리/“제재는 최후책”… 국무부선 신중론
북한이 영변원자로 핵연료봉 교체때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입회는 허용하되 시료채취는 거부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IAEA와 미국측에 각각 전달함으로써 북한 핵문제는 점차 어려운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정부는 북한 핵문제가 외교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유엔을 통한 대북한 제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윌리엄 페리 미 국방장관을 중심으로 한 강경론자들은 5월 중순이면 유엔제재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면서 미국내 대북한 강경여론 조성에 나서고 있다.
페리 장관은 북한이 IAEA 사찰에 대해 계속 부정적인 반응을 보임에 따라 한반도의 군사적 불안정 가능성을 재삼 거론하는 한편 대북한 군사태세 완비를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주한미군 전투태세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미 국무부는 아직도 북한 핵해결의 외교적 방법이 완전 소진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미 국무부는 북한이 대화로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서 어떤 방식이든 진전을 보이면 이를 대화단절로 간주하지 않고 외교적 해결을 위해 대북한 접촉과 압력을 계속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유엔을 통한 대북한 제재는 최종적이고 최악의 방법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이번의 북한 강석주 외교부부장이 로버트 갈루치 미 국무부차관보에 보낸 답신도 미국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면서도 이를 하나의 진전으로 간주,다시 북한측에 미국의 요구를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미 국방부와 국무부의 견해 및 접근방식의 차이는 ▲미국이 대북한제재를 선택할 경우 직면하게 될 위험과 ▲제재를 선택하더라도 유엔에서 이같은 결의가 완전히 통과될 것인지에 대한 자신감 결여,그리고 ▲제재가 발동되더라도 중국과 일본의 협력이 확실하지 않다는 국제환경 조성의 미비를 감안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전쟁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주한미군 전투력 강화에 역점을 두고 있는 대신 국무부는 국방부의 전투태세 완비와 국제환경 조성이 끝날 때까지는 유엔제재와 같은 강력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결코 현명하지 않다는 판단으로 외교적 방법을 계속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입장차이는 북한핵을 해결한다는 기본정책은 같지만 방법상의 차이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북한측 서한에 대해서도 해석을 달리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 나오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국방부측은 이번 서한을 북한측의 완전한 사찰거부로 받아들이고 있는 반면,국무부는 종전의 북한입장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는 논평을 하면서도 다시 대화를 통한 해결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페리 국방장관은 북한이 영변원자로 핵연료봉 교체가 임박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과 달리 국무부는 아직 핵연료봉을 교체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하고 있다.
페리 장관은 북한이 이미 핵연료봉 교체를 위한 과정을 밟고 있다고 말했으나 국무부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핵연료봉 교체시 시료채취 여부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어찌됐든 IAEA가 북한측의 서한에 대해 이미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고 미정부는 부처간에 접근방식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역시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어 북한 핵문제는 사실상 막다른 길에 접어들고 있는 느낌이다.
반면에 미정부나 IAEA의 이런 판단과는 달리 미국의 일반여론은 북한 핵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점차 옅어지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미정부는 또다른 내부 장애에 부닥치고 있다. 이같은 미국내 상황들이 북한 핵해결을 점점 더 어렵게 하고 있는 셈이다.<워싱턴=진창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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