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망언 왜 계속되나/일 지도층 본심은 “공식사과 불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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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제국주의시절 있을 수 있는 일”/86년 망언 등미 문부상 취소않고 파면 택해/영야 법상 발언도 돌출성으로 보긴 어려워
나가노 시게토(영야무문) 일 법무상의 발언이 또 말썽이 되고 있다.
그는 지난 3일 『남경대학살은 날조된 것이고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었으며 군위안부는 당시의 공창이었다』고 주장했다.
그같은 망언은 한국과 중국에서 즉시 큰 반발을 불러일으켜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외유중인 하타 쓰토무(우전자) 총리는 4일 『나가노 법무상의 발언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히고 『일본의 침략행위와 식민지배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슬픔을 안겨주었다』고 해명했다.
나가노 법무상도 6일 서둘러 자신의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며 해명 기자회견을 했다.
일 정치가들의 과거사를 둘러싼 망언은 2차대전후 수없이 반복됐다.
지난 88년 5월13일 오쿠노 세이스케(오야성량) 국토청장관은 중일전쟁과 관련,『일본에 침략의도가 없었다. 노구교사건은 우발적이었다』고 한 발언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또 후지오 마사유키(등미정행) 문부상은 86년 9월8일 『한일합방은 한국에도 책임이 있다』고 한 발언 때문에 파면됐다.
후지오는 당시 끝까지 자신의 발언을 취소하거나 사과하지 않고 파면의 길을 택했다.
지난해 12월2일에는 나카니시 게이스케(중서계개) 당시 방위청장관이 『반세기전에 만든 헌법에 달라붙어 있는 모습은 좋지 않다』며 개헌을 주장했다가 국회에서 말썽이 되자 사임했다.
이같은 망언이 자꾸 반복되는 것은 일본인들의 사고 밑바탕에 깔려있는 과거사에 대한 역사인식 탓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흔히 속마음(혼네·본음)과 겉으로 내뱉는 말(다테마에·건전)이 다른 일본인들이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다테마에」로 해왔기 때문이다.
쇼와(소화) 일왕이 전후에도 그대로 일본의 상징으로 유지되고 기시 노부스케(안신개)·요시다 시게루(길전무) 등 일본의 전후 지도자들은 대부분 군국주의에 적극 동참했던 인사들이다.
기시는 특히 만주국 경영에 동참했으며 도조(동조) 내각의 상공상을 지내 A급 전범으로 체포까지 됐던 인물이다.
이들에게 자신들이 옳다고 믿고 행동했던 식민지 지배와 대동아전쟁에 대한 반성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역사교육에서도 전후세대들에게 과거사를 올바로 가르치지 않았다.
지난 82년 일 문부성이 교과서 검정시 「아시아침략」을 「진출」로 고치라고 지시한 사실이 밝혀져 교과서 파동을 일으켰던 것이 좋은 예다.
일 우익인사들은 기를 쓰고 태평양전쟁을 대동아전쟁이라고 부른다.
태평양이라는 말은 미국이 강요한 말이고 대동아전쟁은 전쟁중 일본정부가 각의에서 정식 결정한 개념으로 의미가 크게 다른 탓이다.
태평양전쟁은 동경재판에 근거한 사관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일본 지도부의 공동모의에 의한 동아침략을 태평양에서 저지한 것이 민주주의 세력인 미·영으로,파시즘에 대한 민주세력의 승리』를 뜻한다.
반면 대동아전쟁은 『식민지를 구미로부터 해방하는 것으로 전쟁목적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개념이다.
한국을 식민지화한 것에 대해 와타나베 쇼이치(도부승일) 조치(상지)대 교수 같은 우익인사들은 『러시아의 남하를 막으려는 목적이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한국을 병합한 것에 서구열강은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제국주의시절 있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견해를 펴고 있다.
이처럼 드러내놓고 식민지지배나 침략을 정당화하지는 않지만 정부관계자들을 포함한 일반인사들의 속마음 즉 「혼네」는 이와 대동소이하다.
미국 랜드연구소 프란시스 후쿠야마씨는 『아시아제국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립서비스」는 하지만 일본이 과거에 잘못한 것을 특별히 공식적으로 사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일본의 오피니언 리더중 「주류파」들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과거 일본 육사출신으로 전쟁에 참여했고 전후 육상자위대 막료장을 지낸 나가노 법무상의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일시적인 망언이나 취소발언으로 끝나지 않을 자민당 정권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일본 지도층의 일관된 생각으로 봐야 한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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