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회장 은퇴 아리송한 “3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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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실제로 물러나나/현대제재 풀리나/명예회장실 존폐/본인 부인속 회사선 기정사실화/은퇴/경제논리 아닌 청와대 반응이 변수/제재/상징성 커… 정 회장 스스로 결정해야/회장실
「귀거래사 기자회견」과 「그 이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3일 『경영은 정세영회장에게 맡기고 나는 서산농장 일에만 전념하겠다』는 등의 짤막한 몇마디 말만 남기고 일본으로 훌쩍 떠났다.
떠난 정씨는 이제 바다건너 말이 없지만 갖가지 궁금증들은 숱하게 남겨 놓았다.
정씨의 3일 김포 기자회견장은 속사정을 모르고 겉으로만 보아서는 사실 헷갈림의 연속이었다. 정씨는 마치 등을 떼밀리다시피 출국했고 정씨를 떠나보낸 그룹측은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난다는 것』이라며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진짜 속사정은 명백히 「가족들에 의한 정씨의 은퇴·출국」이었고,따라서 정씨의 「마지못한 출국 기자회견」을 배웅한 정씨 일가와 현대그룹측은 갖가지 문제로 말못할 속앓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현대그룹측에 숙제처럼 남아있는 몇가지 궁금증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정씨는 과연 서산농장 일에만 전념할까.
경영 은퇴선언은 두차례나 했지만 명예회장직을 그대로 고수하는 한 경영에 직·간접으로 간여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정씨가 『명예회장직을 그만 두는 것이냐』는 물음에 『처음 들어보는 얘기다. 그런 얘기가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면서 『중대발표라고들 하는데 나는 기자들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왔는지 의아스럽다』고 반문한 것도 여전히 그가 명예회장 자리에 집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정 회장의 6남 정몽준의원 등 측근들은 정 회장 기자회견 직후 『정 회장이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이라고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렸고 정 의원은 기자회견 도중 『비행기 탈 시간이 됐다』면서 초조해 했다.
현대그룹 문화실도 이날 오전에는 『정 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사실을 너무 부각시키지 말아달라』고 했다가 오후에는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이 확실하다』고 강조하는 등 태도를 완전히 바꿨다.
현대그룹 관계자도 『정 명예회장이 서산농장 일에 전념한다고 하지만 개인 땅이 아닌 만큼 현대측과 어떤 연결고리를 가져야 한다』면서 『그렇다고 해서 정 명예회장을 「정영감」이라 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정부의 현대제재는 풀릴까.
정씨의 기자회견 직후 제재를 푸느니 마느니 말들이 많지만 이 문제는 정치문제이지 경제논리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게 중론이다. 쉽게 말해 과천정부 경제부처 장관 몇몇이 모여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 청와대가 단안을 내려야 할 문제라는 얘기다.
재계에서는 이제 정씨가 어쨌든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한 이상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제재해제를 검토해볼 때라는 여론이 나오고 있다.
◇명예회장실을 없앨 것인가.
현대그룹은 현재 정 명예회장을 위해 서울 계동 그룹본사 12층에 「명예회장실」을 두고 있는데 방의 「상징성」 때문에 이 방의 존폐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누가 그룹 최고어른의 방을 없애는 문제를 마음대로 얘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정 명예회장이 일본방문을 마치고 돌아온뒤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룹 일각에서는 정부 고위층의 뜻을 헤아려 명예회장실을 없애는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씨는 대선기간중 광화문 국민당사로 집무실을 옮겨 이 방을 정세영회장이 사용했으나 작년 2월 정계은퇴선언후 다시 본사로 돌아와 이 방을 다시 차지했으며,정 회장은 현재 8층 현대자동차 회장실을 사용하고 있다.<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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