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비리 아닌 개인의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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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 폭행 혐의로 구속됐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1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법원 청사를 나서고 있다. [사진=박종근 기자]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항소심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5월 11일에 구속된 뒤 124일 만이다. 보복 폭행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 회장은 1심에서 징역 1년6월의 실형이 선고돼 수감됐다가 지난달 구속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져 서울대병원 특실에서 지내 왔다. 검찰이 1심 선고 후 항소하지 않았고, 한화그룹도 상고할 계획이 없다고 밝혀 김 회장의 형은 사실상 확정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부(재판장 김득환 부장판사)는 "가해자를 밝히는 과정에서 사건이 확대됐고, 정작 가해자를 찾은 뒤에는 폭행하지 않아 이 사건이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집행유예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김득환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대기업 회장이긴 하지만 이 사건은 기본적으로 재벌 비리가 아닌 개인적인 사안"이라며 "일반인이 저질렀어도 똑같은 판결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국민의 법 감정을 고려해 사회봉사라는 육체 노동을 함께 명령했다"며 "명령을 이행하면서 김 회장도 특권의식을 버리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부장판사는 판결문에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는 4자성어를 사용해 눈길을 끌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자기의 재기를 드러내지 않고 속된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참된 자아를 보인다'는 뜻이다.

김 부장판사는 "1심 선고 이후 김 회장이 법정에서 반성하는 빛을 보인 점을 참작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1심 재판 과정에서 "권투 좀 아십니까. 아구를 몇 번 돌렸다는 겁니다"라고 진술하는가 하면, 턱을 괴고 질문에 응하다 재판장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김 회장은 10일 이내에 서울 보호관찰소에 형 내용을 신고하고, 한 달 이내에 사회봉사명령 이행을 시작해야 한다. 하루 여덟 시간씩 25일간 봉사해야 하며, 해외 출장 등 부득이한 경우 보호관찰소 측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박성우 기자<blast@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사회봉사명령=유죄가 인정된 피고인에게 무보수로 일정 기간 동안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도록 한 제도. 김 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김 회장이 특권의식을 버리고 공동체의 일원이 되라는 의미로 사회봉사 기관을 '복지시설 및 단체 봉사활동, 대민지원 봉사활동'으로 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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