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유럽 시장조정 나섰다/“「불당 100엔」은 마지노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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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금융자본 탈달러 가속이 원인/일 흑자 워낙 커 엔고 지속될듯
1달러짜리 지폐를 1백엔짜리 동전과 맞바꾸게 되는가.
일본 엔화가 지난 29일 뉴욕 및 런던 외환시장에서 한때 달러당 1백.65엔까지 상승하자 금융관계자들은 드디어 달러당 1백엔대 선이 무너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1달러를 내면 1백엔짜리 동전 한닢조차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과 미국 뉴욕 연방은행이 즉각 외환시장에 개입,엔화는 일단 1백1∼1백2엔선에서 안정을 찾았다.
엔화가 이처럼 초강세를 보이게 된 것은 최근 미국의 주가 및 채권국가가 연일 하락하면서 금융자금이 주식·채권시장을 떠나 엔화매입으로 흘러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전문가의 표현대로 「미국의 주식·채권시장의 하락을 계기로 달러화로부터 엔화로의 자본도피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백5엔대에서 1백2엔대까지 서서히 상승하던 엔화가 이날 일거에 1백엔대로 치솟은 배경은 28일 미국의 1분기 경제성장이 당초 예상보다 0.5∼1% 밑도는 2.6%로 발표됐기 때문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긴축금융으로 경제성장에 브레이크가 걸리자 금융자본의 탈달러 현상이 급가속된 것이다.
심리적인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달러당 1백엔선이 무너질 우려가 확산되자 지금까지 일본의 거대한 무역흑자를 줄이기 위해 은근히 엔고를 부추겨온 미국은 뉴욕연방은행을 통해 「엔화 팔기」에 나섰다. 이같은 미국 금융정책의 전환은 주식·채권시장에서 자본이 지나치게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포석이다.
엔고의 직접 피해당사자인 일본도 곧바로 시장개입에 들어갔다. 새로 출범한 하타(우전) 내각은 30일 긴급 경제각료회의를 열고 미국·유럽 등에 시장조정을 통한 엔화안정 협조를 의뢰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은행도 「엔화 매각­달러화 매입」에 사용되는 시장개입자금을 하루 30억달러 수준까지 늘리기로 하는 한편,필요에 따라 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 외환시장을 통해 엔화공급을 늘리기로 햇다.
한편 그동안 일본무역흑자를 줄여야 한다는 미국측 주장에 동조,엔고를 방치해온 유럽은 엔 끌어내리기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유럽은 달러화 하락으로 마르크화 등 역내 통화의 가치가 오르자 수출에서 가격경쟁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엔 개입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같은 각국의 시장개입으로 엔화는 당분간 달러당 1백엔선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의 무역흑자가 여전히 크기 때문에 엔고 압력은 유지할 것』이라는 로렌스 서머즈 미 재무차관의 말이 시사하듯,엔화가 내리더라도 큰폭의 하락은 없을 것이며,1백2엔대 전후에서 보합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이석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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