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 원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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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담배인삼공사가 「88콤팩트」라는 10개비 담배를 새로 개발해서 4백원을 받으려고 시제품까지 돌렸다가 편법 인상이라는 경제기획원의 제동에 걸려 주춤해 버렸다. 20개비들이 「88」 담배의 값이 7백원이면 10개비짜리는 의당 3백50원이어야 하는데 어째서 4백원이냐는 이의제기다. 이런 이의는 기획원뿐만 아니라 담배 피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기할 문제다. 정부투자기관인 공사가 담배 질과 맛을 개발하고 혁신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시장 야바위꾼처럼 개비 줄이고 값만 올리는 약은 편법을 쓰는게 아니냐는 비난이 당장 쏟아지게 되어있다.
그러나 담배인삼공사쪽 사정을 들어보면 억울한 점도 없지 않다. 「88」이라는 상품명이 인기가 높아 붙였을 뿐이지 상품이 짙은 「88」과 월등히 다르다는 것이다. 필터도 특수재질을 썼고 포장도 고급화되었다고 한다. 원래 「88」도 갑당 54원의 적자를 보는 상품이어서 새 상품은 4백원 이상을 꼭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리 옳은 주장을 해도 지금까지 해온 소행을 봐선 곧이 들리지 않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전매청 시절부터 지금까지 담뱃값 올릴 때가 되면 포장 바꾸고 새상품 나온다고 선전하고는 담뱃값만 올려왔으니 믿으려 들지를 않는다.
이런게 모두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정부가 국민을 우롱하고 사기치는 일로만 보이게 된다. 작게는 담배인삼공사고 크게는 권위주의시대의 원죄에 속하는 낡은 악습이다.
상품과 회사에 대한 신뢰란 현란한 광고만으로 쌓여지는게 아니다. 제품의 질과 투철한 기업정신이 사업의 기본이다. 지금까지 값 올릴 때면 늘상 사용하던 구태의연한 방식을 적용하는데 누가 그 제품의 우수성을 믿고 올린 값에 대해 신용을 할 것인가. 담뱃값만 그런게 아니다. 알맹이는 밤낮 그대로인데 껍질만 바꾸어놓고 규제완화니 행정쇄신이니 읊어댄다고 당장 개혁되고 선진화되는게 아니듯 말이다.
담배도 기왕 개발할바엔 제품의 질로 승부를 해야 한다. 우수한 제품이라면 10개비든 20개비든,이름이 또 무엇이든 문제가 되질 않는다. 알맹이는 그대로인데 껍질만 바꿔놓고 값을 올리려드니 그게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개혁의 시대에 더이상 구시대의 원죄를 답습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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