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김상진씨 … 석연찮은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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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건설업자 김상진(42)씨의 이상한 행적에 의문이 일고 있다. 그는 정윤재(43)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과의 유착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달 말 언론 보도가 나온 뒤 잠적했던 김씨는 6일 검찰에 전격 자진 출두했다. 영장실질심사도 받지 않고 그대로 구속됐다. 출두 전엔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정 전 비서관 외에 금품 로비를 한 실력자가 더 있음을 시사하는 주장을 했다. 김씨의 한 측근은 9일 본지 기자와 만나 "김씨는 법조계, 특히 검찰 인사들과 친분이 있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수상한 김씨 행적=김씨는 자신에 대한 의혹이 보도되기 시작한 지난달 29일 이후 잠적했다. 살고 있던 부산 연제구 거제동의 아파트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자신의 변호인과도 연락을 끊었다. 그러다 검찰에 자진 출두한 뒤 긴급체포됐다. 7일엔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포기하고 구속됐다. 자신의 혐의를 깨끗이 시인한 모양새다.

김씨가 검찰 출두 직전 한 방송사와 누군가를 '협박'하는 듯한 인터뷰를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정 전 비서관보다 더한 돈을 먹고도 입을 닦았다"며 유력 인사의 비호가 있었음을 내비쳤다. 김씨의 측근은 "우리가 입을 열면 여러 사람이 다친다"는 '경고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김씨는 검찰 수사에서 금품 로비를 한 인물을 선별적으로 폭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열어 놓은 것이다.대신 자신의 범죄 혐의에 대해선 검찰에 선처를 요구하는 물밑협상을 시도할 수 있다. 검찰 입장에선 김씨의 입을 여는 게 가장 중요하다. 대검 수사팀에서 계좌를 추적하고 있지만 철저히 현금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석연치 않은 수사=이에 앞서 6월 김씨는 횡령.사기 혐의를 폭로하겠다며 각각 10억원을 받은 부하직원 두 명을 공갈죄로 검찰에 진정했다. 진정 사건 조사에서 자신의 비리가 드러날 수 있어 웬만한 자신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 사건이 부산지검 특수부에 배당된 것도 이례적이다. 통상 공갈 사건은 형사부에 배당된다. 검찰 관계자는 "원래 공갈 사건은 형사부에 배당되지만 죄질이 특히 나쁘거나 특수 수사로 연결될 수 있는 경우에 특수부가 맡기도 한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김씨는 사기.횡령 혐의를 대부분 시인했다. 정상곤(53.구속) 전 국세청장에게 1억원을 건넨 혐의도 자백했다. 구속됐지만 범죄 혐의를 인정하고 피해액을 모두 변제했다는 이유로 법원의 구속적부심에서 열흘 만에 풀려났다.

하지만 검찰은 김씨 조사 과정에서 의심스러운 정황을 포착했던 정윤재 전 비서관을 조사조차 하지 않고 덮었다. 정 전 비서관은 지난해 8월 정 전 청장과 김씨의 세무조사 무마 자리를 주선했다. 또 2003년 3월 김씨로부터 2000만원의 후원금을 받기도 했다.

언론에 정 전 비서관의 의혹이 보도되지 않았다면 김씨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개발 사업을 계속 추진할 수 있었다. 400억원대의 사기.횡령 혐의가 드러났는데도 김씨 입장에선 큰 타격을 받지 않고 수사가 일단 종료되는 셈이었다.

김씨의 측근 K씨는 "김씨가 법조 인맥을 관리했다"며 "평소 검찰 간부들과 전화통화를 자주 했고, 골프도 가끔 친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K씨는 "폭행 사건에 연루된 자신의 회사 임원을 전화 한 통으로 빼줬다고 자랑하고 다녀 주변에선 검찰에 '빽'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지검은 이번 주부터 김씨의 대출 사기와 관련해 금융기관의 간부들을 불러 조사한다. 김씨가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60억원을 사기 대출받는 과정에 권력 실세와 같은 배후나 내부 공모자가 있었는지를 캐겠다는 것이다. 김씨가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부산시 간부에게 청탁과 함께 금품을 줬는지도 수사 대상이다.

부산=김승현.민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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