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진의 로봇 이야기] 기술개발 가로막는 황당한 특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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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 27면

신문에서 ‘국제특허 획득!’ ‘수십조원의 가치를 지닌 특허기술’과 같은 기사나 광고를 자주 접한다. 과연 특허 받은 기술은 우수하고 특허를 받으면 돈벌이가 될 수 있는 걸까.

특허는 본래 기술개발 활동에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 만든 제도다. 공들여 개발한 신기술에 대해 배타적인 사용권을 부여해서 다른 사람이 공짜로 베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기술의 내용은 다 공개되기 때문에 필요한 사람은 기술을 사다 쓰면 된다. 그 결과 특허제도는 기술개발 의욕을 높이고 신기술을 확산시키는 효과를 낸다.

지능형 로봇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일본은 특허제도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인간형 로봇 아시모를 만드는 혼다나 강아지 로봇 아이보를 만드는 소니가 대표적이다. 아시모는 홍보용이라 시장 판매는 하지 않고, 아이보는 매출 부진으로 지난해 판매를 중단했지만 세계 기술개발 전쟁에서 선도적인 입지를 굳히는 데는 성공했다. 이 두 회사는 엄청난 양의 로봇 개발기술 특허를 일본뿐 아니라 한국·미국 등지에 등록했다. 남보다 먼저 시작해서 애써 축적한 기술을 보호받으려 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도 개발경쟁에 뒤지지 않도록 좋은 로봇기술을 많이 개발하기 위해 다수의 특허를 확보해 둬야 한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 등록된 로봇 특허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사례가 많다. 특허 청구 요지 예. “자율적 이동이 가능하며 방문자를 식별해 대화하는 안내 로봇 장치. 방문자 식별을 위해 카메라를 사용하거나 대화를 위하여 마이크를 사용할 수 있음.”

이 문구대로라면 향후 우리나라에서 안내 로봇을 개발해 상품화할 때 이 특허를 침해하지 않을 묘안이 없다. 또 이 기술이 과연 특허등록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분명히 법률상 특허로 등록되어 있다는 기술이 이 정도다.

또 다른 황당한 특허 사례를 보자(위 그림). 인간형 로봇이 땅에 엎드렸다 일어나기 위한 동작제어기술에 관한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로봇경진대회에 참가하는 고등학생들도 구현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엄연한 특허이기 때문에 앞으로 인간형 로봇 장난감에 그림과 같은 동작을 취하는 제품을 팔면 특허를 침해하게 된다.

그렇다고 특허청을 탓할 수도 없다. 특허청은 청구된 기술이 기존의 기술과 명백히 같다는 문서상의 증거가 있거나, 다른 사람이 특허 거절사유를 제시해 이의신청을 하는 등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특허를 내줘야 한다. 물론 등록된 후에도 다른 사람이 소송을 걸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만 법적 절차를 밟으려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 이런 제도적 허점 때문에 상당수의 특허등록자들은 뭐든지 미리 차지해 두고 그 기술로 후발주자가 돈을 벌면 특허 침해로 시비를 걸어 이득을 취하려 한다.

수많은 분쟁에서 보듯 특허제도가 당초 취지와 달리 오히려 기술개발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는 현실을 언제까지 내버려 둘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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