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판결이 주는 교훈(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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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대 조교 성희롱사건에 대한 서울민사지법의 배상판결은 여성에 대한 섣부른 언행이 사법적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말해주는 첫 판결이다.
어디까지가 허용될 수 있는 언행이냐,아니냐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무릇 판결이란 구체적 사건과 상황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이 판결 하나로 그에 대한 세세한 기준을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일 것이다. 다만 그동안 일부 남성들이 자기 위주로 거리낌없이 해온 언행중 일부는 성희롱으로 규정될 수 있으며,성폭력뿐 아니라 성희롱도 사법적 제재대상이 될 수 있음이 분명해진 것이다.
비록 확정판결은 아니나 이 판결만으로도 일부 남성들의 그릇된 통념에는 충격을 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번에 문제된 사건이 아니더라도 일부 남성들의 언행이 여성들을 당혹스럽게 하거나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는 쪽에선 그것이 악의없는 것이었고 친밀감의 표시였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그것을 그대로 받아주지 않는한 그 언행은 삼가는 것이 원칙이다. 그것은 자유도 다른 사람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한도에서만 허용되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그럼에도 그동안 많은 남성들은 상대여성의 감정은 거의 고려하지 않고 극히 주관적인 판단아래 언행을 해왔다. 의도적인 희롱이라면 더욱 말할 것도 없으나 의도적이 아니었더라도 상대가 그것을 희롱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음을 인식하고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남성의 언행이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우리 사회의 지배문화가 남성우위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점에 대해선 남성사회에서의 반성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이번 문제가 당혹감과 곤혹스러움을 가져다주는 것도 분명하다. 인간사회에선 동료간이건,상하간이건 가벼운 농담이나 접촉이 그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만드는 긍정적 요소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전혀 불가능하다면 인간관계는 삭막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불필요하게 대립적이 될 수 있다.
과연 어디까지가 허용될 수 있는 농담이며 접촉일까. 친밀도에 따라 결정될 문제라 하겠지만 친밀한 사이라 할지라도 성격이 다양하며,또 같은 사람이라도 그때그때의 기분이나 분위기에 따라 반응이 다를 것이다. 그것에 대한 적절한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남성만의 것일까.
이제 처음으로 사회적 주목을 끈 셈이므로 정답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은 남성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희롱을 기계적으로 판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 그 자체가 치명적 결과를 가져오는 고발이나 소송이 남발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들은 이제부터 새로운 관행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단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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