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국 교수의 LOVE TOOTH] 심한 이갈이, 깊은 잠 훼방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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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잠든 고요한 여름밤, 풀벌레 소리 위로 갑자기 들려오는 “바드득 바드득”하는 이갈이 소리는 납량물 못지않게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가끔 이혼 사유로까지 등장하는 이갈이는 주변 사람의 숙면을 방해하지만 정작 본인은 단잠에 빠진 채 세상 모르고 잠을 잔다. 실제 자신이 이갈이를 하는 것을 아는 경우는 20%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갈이의 주인공도 결코 편치는 않다. 이갈이를 하면 정상적인 저작 때보다 크게는 100배 정도의 과도한 힘이 치아에 가해진다. 게다가 아래위로 절구질하는 듯한 저작운동과는 달리 맷돌처럼 치아 표면을 간다. 이런 이갈이의 특성 때문에 이의 구조뿐 아니라 전신 질환을 유발한다.

 우선 이갈이를 하면 치아 표면이 마모돼 평편해진다. 이렇게 되면 정교하게 맞물리는 치아의 구조가 변형돼 음식물이 잘 씹히지 않거나 잘 낀다. 치아가 약해져 균열현상도 나타난다. 이로 인해 치아 내부의 신경이 노출돼 시린 이가 된다.

 잇몸이 약한 부위에선 염증이 악화된다. 치아를 지지하는 뼈인 치조골 흡수가 빠르게 진행돼 이가 기둥째 흔들린다.

 턱관절과 턱뼈 근육에도 이상이 온다. 밤사이 근육을 과도하게 사용하고 과긴장한 탓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피곤하거나, 둔통이 있는 사람, 또 갑자기 입이 벌어지지 않거나 턱 움직임이 어려운 사람은 이갈이를 의심해야 한다.

 수면 중의 이갈이는 깊은 잠을 자는 렘(REM)수면 상태에서 가벼운 수면 상태로 이행되는 시기에 주로 발생한다. 따라서 숙면을 방해해 일어난 뒤에도 개운치 않은 느낌을 준다.
 이갈이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원인이 불명확한 만큼 효과적인 치료법 또한 없다. 치아의 맞물림이 좋지 않을 때, 또 스트레스 상황에서 심해지긴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따라서 이갈이 치료는 이갈이로 인한 치아 손상과 신체적 증상을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침에 일어나 턱 근육이 뻐근하거나 턱관절이 아픈 사람, 또 머리의 둔통이 있거나 치아가 불편한 사람은 이갈이에 대한 검사와 치료가 필요하다. 이런 환자에겐 치아의 맞물림 조정, 행동조절 및 필요한 경우 약물 처방이 많은 도움을 준다.

 특히 치과에서 제작하는 스플린트 같은 교합장치를 수면 중에 착용하면 치아의 마모를 예방하고, 턱관절과 턱뼈 근육에 가해지는 무리한 힘을 차단할 수 있다.

박영국 교수 경희대 치대병원 (교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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