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선특사」 조건완화 이렇게 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현실적인 대안”/대북경협­핵문제는 분리 바람직
정부는 북­미 3단게 회담을 위해서는 남북 특사교환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이 있기전 선 특사교한 철회는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수용,우리측에 검토를 요청해온 것으로 찬반의견이 정부내에서 뿐만 아니라 전문가 사이에서도 크게 엇갈렸다. 이호재(고려대)·황병무(국방대학원) 교수의 의견을 소개한다.<편집자주>
북한은 「완전한 핵투명성 보장」을 자위권 침해로 믿고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것 같다. 이 경우 수십번 특사를 교환하고 설사 남북 정상회담이 열려도 핵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러시아·중국과의 동맹관계가 전혀 믿을 수 없게 되어 고립상태인 북한정권은 핵개발 포기를 선언할 수 없을 것이다. 자위권을 내세우는 북한내의 강경파들의 저항 때문에 김일성도 국제적 압력에 순응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도 한때 국제적 압력 때문에 핵개발 포기를 선언하려 했으나 강경파들의 자위권 주장 압력 때문에 핵무기 보유여부를 「지하실에 핵무기를 둔 것」 같은 모호한 핵정책을 고수하며 국제사찰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도 한때 국제적으로 큰 문제였으나 지금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어떤 국제적 압력에도 북한의 핵개발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 북한은 스스로 군사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거나 다른 국가와의 외교관계에서 충분한 보상 혹은 확실한 보장이 주어져 핵무기가 더이상 필요없을 때 후퇴할 것이다.
북한이 미국·일본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경제협력과 국가승인이다.
정권의 존속을 보장할 수 있는 국제적 조치없이 「핵투명성」만 확보하려는 것을 북한은 흡수통일의 음모,혹은 목조르기로 의심하고 있다. 우리로선 도덕적 입장에서 혹은 감정대로 「완전한 핵사찰」을 거부하는 북한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응징하고 싶다.
버마 아웅산의 만행,KAL기 폭파사건 때는 지금보다 더 북한의 만행을 응징하고 싶었다. 그러나 응징하지 못했다. 우리가 힘이 없고 싸울 줄 모르는 「비겁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평양이 불바다가 되면 서울도 불바다가 되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우리는 잘 참았다. 북한핵 논쟁에서 한국의 한계는 북한과 전쟁을 할 수 없고,해서도 안되는데 있다.
정부의 외교안보팀내 혼선과 일관성 잃은 정책도 근본적으로 이 한계점에서 비롯되는 면이 많다. 북한의 핵투명성 보장이 아무리 중요해도 그 때문에 전쟁도 불사한다는 식으로 나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를 빠져나가는 길은 무엇일까.
남북은 핵논쟁으로 감정이 격하되어 있어 상호신뢰감을 회복하는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지금이라도 가능한한 빨리 대북 경협문제와 핵문제를 분리하는 것이 옳다.
북한 핵문제는 미국과 북한,그리고 국제적인 사건이 되어 한국의 역할이 한정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개선·경협 등 많은 문제와 함께 핵문제가 논의되는 과정에 남북 특사교환은 별 의미가 없고,팀스피리트훈련 재개도 북한의 태도만 더욱 경직시킬 것이다. 아직 우리가 주체적으로 해볼 수 있는 영역은 경제협력에 남아있다.
핵문제에 집착할수록 남북협상의 주도권은 미국에 넘어가고 남북대화는 계속 논쟁장이 될 뿐이다. 경협과 미·일의 북한 승인이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 과감한 정책전환만이 남북한 민족에게 새시대를 맞게 할 것이다.<이호재 고려대 교수·국제정치>
◎“협상입지 약화”/미의 불분명한 핵전략 방관안돼
북한 핵시설 재사찰을 촉구하는 유엔안보리 의장성명 발표이후 북한의 태도변화를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한국 정책당국은 3단계 북­미 고위급회담 전제조건으로 내건 남북 특사교한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의를 벌이고 있다.
북한 외교부는 의장성명이후 강경대응보다는 북­미간의 3단계 회담 개최와 그 전제조건인 남북한 특사교한을 연계하지 않을 경우 국제원자력기구의 추가사찰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미국은 북한의사 수용이 현 국면을 타개하는 유일한 현실적 방안임을 들어 한국에 검토를 요구해온 것으로 보인다.
북한제의의 수용론자들은 핵긴장국면 타개를 위해 북한의 국제사찰을 수용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현실적 정책대안이며,북한이 원하지 않는 남북대화를 개최해봐야 그 결과는 비관적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
수용불가론의 근거는 「선 특사」의 고리를 풀때 남북대화가 지연됨은 물론 정부의 일관성없는 정책에 대한 국민여론의 비판을 면할 수 없을뿐 아니라 북한의 전쟁협박에 다시 한국만 양보하는 꼴이 되어 차후 대북협상에서의 입지를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북한핵으로 인한 한반도 긴장국면의 우려와 핵 조기타결의 이유 때문에 남북 특사교환 조건을 재고한다는 것은 시기적으로나 핵문제 타결전망 면에서나,그리고 대북협상전략 측면에서 현행한 조치가 아니다.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엔 남북한 대화재개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의장성명이 구속력이 없다고 하지만 한국이 주장했고 중국도 동의했다는 점에서 국제적 합의가 형성된 대목이다.
둘째,날이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는 미국의 대북 핵정책 목표다. 작년 11월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이 말한 『북한이 한개의 원자탄도 개발하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원칙하에서 북한에 대한 핵투명성 보장을 추구할 것인지,아니면 북한이 한두개의 핵폭탄을 갖는 것을 허용하되 핵확산금지체제에 완전 복귀하고 이미 보유한 핵폭탄이나 핵기술을 제3국에 이전하지 않을 것을 보장받는데 둘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후자일 경우,미국의 대북전략은 강압보다는 유화적일 수 밖에 없고 북­미간의 핵게임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한국은 이러한 미국의 불투명한 대북핵 전략에 방관할 수 없으며 이 기간에 남북대화를 공백상태로 남겨둘 수 없다. 국민정서도 정부의 태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북한 핵문제는 미·북을 주요 행위자로 국제원자력기구와 한국을 비롯해 중국·일본이 개입,또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다자협상 구도를 지닌다.
미­북,일­북 관계개선과 남북한 관계개선을 연계시키는 기존 정책의 일관성을 전제로 한다면 미·일·중에 대한 카드가 필요하다.
북­미 3단계 회담과 남북한 특사교환의 동시실시에 관한 고려도 최대한 북한의 「서울 불바다」론에 대한 사과 또는 취소를 전제로 하거나,최소한 북한의 선 제의에 우리측이 검토하는 모양새를 갖추어야 한다. 선제양보가 북한의 양보를 유도할 것이라는 기대는 더이상 가져서는 안된다.
의장성명이 시사한 재사찰 수용시한인 4월말가지 우리는 북한의 태도변화를 예의주시해 볼 필요가 있다. 그후 필요하다면 「선 특사」 조건의 융통성있는 적용을 재고해도 늦지 않다.<황병무 국방대학원 교수·국제정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