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명예훼손 성립 어려운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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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울중앙지검 고위 관계자는 5일 청와대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같이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이 후보 캠프의 진수희 의원의 경우 '청와대가 국가기관을 총동원해 정치공작을 벌이고 있고, 마포구 공덕동에 이명박 죽이기 특별대책반까지 구성해 조정하고 있다'고 구체적인 발언을 했지만 이 후보는 아니지 않으냐"고도 했다. 청와대가 이 후보를 고소하겠다고 나서자 검찰은 곤혹스럽다는 반응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 후보가 직접 구체적으로 대통령이나 청와대비서실을 상대로 '청와대 공작설'을 제기하지 않았다면 명예훼손 요건이 성립하기 힘들다는 견해가 많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명예훼손 사건은 실제 명예훼손성 발언을 했느냐 여부뿐 아니라 대상이 특정됐는지도 따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청와대가 문제 삼은 이 후보의 발언은 9월 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정원.국세청 할 것 없이 여러 정부기관이 정권 연장 전략을 꾸미고 선거에 개입한다는 건 만천하가 안다. 권력의 중심 세력에서 지시해 본의 아니게 참여하는 것도 있을 거다"라는 내용이다. 판례상 '권력 중심 세력', '만천하가 안다'는 모호한 발언으로는 청와대를 특정한 것으로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

또 국정원과 국세청에서 이 후보 관련 보고서를 만든 것은 사실이므로 전혀 터무니 없는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고 보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청와대 고소 사건은 실체적으로 파헤칠 대단한 내용이 있는 게 아니라 정치적인 공방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검찰이 청와대의 이 후보 고소 사건을 특수1부에 배당할지도 관심거리다.

특수1부는 국정원과 국세청의 지난해 8~9월 이 후보 친인척 개인정보열람 사건을 맡아 수사 중이다. 이미 상당히 진도가 나간 상태이기 때문에 특수1부에 병합될 가능성이 있다. 특수부가 아닌 공안부에 배당될 가능성도 높다. 공안1부는 이 캠프 측 진수희 의원을 '청와대 배후 발언'으로 불구속 기소한 바 있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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