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노출병’ 국정원장, 남북 정상회담 걱정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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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과연 우리는 국가의 위상에 걸맞은 국가 정보기관장을 가지고 있는가. 김만복 국정원장의 처신을 보면서 우리는 자괴감을 느낀다. 그는 최근 아프간에서 신분을 지나치게 노출시켰다. 국정원은 수장(首長)의 업무수행을 찬양하는 어린애 같은 보도자료를 냈다. 김 원장은 고향에 화환을 보내고 휴대전화 번호도 공개했다. 많은 고향 사람이 국정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은밀하고 신중해야 할 정보기관장의 업무수칙을 어기는 것이었다. 그는 조직의 기강에 상처를 주었고 국가 이미지를 훼손했으며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부담을 안겼다.

그렇다면 그는 자숙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는 거취까지 고민해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어제 어설프게 변명하고 거꾸로 언론을 비판했다. 그는 “언론에 경기(驚氣)가 든다”고 했다. 경기가 들 사람은 정보기관장의 ‘아프간 쇼(show)’를 지켜봐야 했던 언론과 국민이다. 아니 도대체 꼭꼭 숨겨야 할 ‘선글라스 협상가’를 옆에 두고 인질들과 기념 촬영을 하거나 기자회견을 하는 게 스파이 수장으로서 있을 수 있는 행동인가. 음지에서 일하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는 국정원의 젊은 직원들이 그런 선배를 어떻게 보겠는가.

그는 자신이 총선에 출마할 뜻이 없음을 여러 차례 언명했는데도 언론이 계속 의혹을 제기한다고 불만을 표했다. 그는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매지 말았어야 한다. 음지에 숨어야 하는 정보기관장이 왜 버젓이 자신의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붙인 화환을 고향 행사에 보내는가. 국정원장이 무슨 지역구 국회의원인가.

전임 원장은 그가 후임자가 되는 데 반대했다. 그의 정치적인 언행이 정보기관장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지금 보면 그의 판단이 맞다. 그런데도 그런 국정원장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목숨을 건 기여를 했다”며 “격려할 것”이라고 했다. 목숨은 국정원이 아니라 인질이 걸었다. 정보기관이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를 대통령도 모르고 국정원장도 모른다. 이런 국정원장이 실무를 담당할 남북 정상회담이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