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Blog]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배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오늘은 TV드라마 얘기부터 해야겠습니다. 최근 종영된 MBC ‘커피프린스 1호점’입니다. 연애감정을 주인공으로 해, 사랑의 환상 그 자체를 그려낸 드라마였죠. 최한결 역으로 데뷔 6년 만에 정상에 오른 공유를 비롯해 ‘커프’의 매력에 중독된 팬들이 극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네요.

 후유증은 팬들만 앓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고은찬 역의 윤은혜는 종방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계속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아직은 어린 배우인 그가 선배 채정안을 붙들고 “헤어지기 싫어. 미칠 것 같아. 어떡해”라며 대성통곡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네요.

 ‘리턴’을 찍었던 김명민은 인터뷰에서 드라마·영화 하나를 끝내는 것은 “실연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 자신도 드라마 ‘하얀 거탑’ 이후 한두 달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렸다면서요. 라디오에서 ‘거탑’ 음악이 나오거나 누군가 ‘거탑’ 얘기만 하면 미칠 것 같았다고요. 실연 후 연애할 때 듣던 음악이 흘러나오면 마음이 찢어지는 것과 똑같은 증상이란 얘깁니다. 그도 그럴 법합니다. 촬영 수개월 동안 배우를 사로잡았던 또 다른 나, 그가 살았던 또 다른 세계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졌으니 상실감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드라마와 배역에 몰입했을수록 상실감은 더 클 거고요. 김명민은 그래서 “배우란 어쩌면 단기간에 정신병을 앓는 직업일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사실 우리는 배우의 연기를 즐기고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곤 하지만, 배우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사랑 연기는 어떨까요? ‘너는 내 운명’ 때 만난 황정민은 촬영 내내 전도연이 은하(극중 연인)로 보여, 식사시간에 눈도 못 마주치고 떨려서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고 하더군요. 신기한 건, 자기 촬영분이 끝나는 순간 그 감정이 일시에 사라졌다는 겁니다. 자기 촬영분을 마치고 전도연 단독인 마지막 촬영장에 나갔는데, 너무도 낯선 배우 전도연이 보여 스스로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의 하지원도 비슷한 얘길 했어요. “삼각관계 드라마를 찍으며 남자 복을 실컷 누렸다”는 그녀는 “집에서도 조인성씨, 소지섭씨가 보고 싶었다”고 털어놨습니다. 물론 배우 자체가 아니라 극중 배역에 대해 느끼는 사랑의 감정인 거죠. 이 감정이 촬영 종료 후 쉽게 사라지는 사람이 있고, 아니면 배역에서 빠져 나오는 데 한참 걸리는 사람도 있을 거고요.

 생각하면 할수록 배우란 참 묘한 직업입니다. 자기 배우들을 끔찍이 챙기는 것으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은 “나도 그랬지만, 결국 영화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배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영화의 매혹에서 배우가 차지하는 비중을 뜻하는 말이죠. 이준익 감독은 신작 ‘즐거운 인생’에서 세 주연 배우가 한 달 만에 악기를 익히는 것을 보고 “배우란 진짜 사람이 아니더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습니다.

 배우의 ‘배(俳)’자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아시죠? 아무나 되는 게 아니고,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과는 뭔가 다른 사람. 배우란 존재는 우리 평범하고 밋밋한 인생에 내려진 선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양성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