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시설 확대에 “초비상”/일,덤핑수주로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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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유휴설비 다시 가동”… 공멸위협도/일/설비 과잉 아니다… 문제는 경쟁력/한
일본 조선업계가 한국조선업체들의 신·증설에 대해 거칠게 반응하고 있다.
일본은 최근 저가공세를 펼쳐 세계 선박시장을 휩쓸고 있으며 유휴설비를 재가동할 수 있다는 「위협」(?)까지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20년만의 대호황을 맞은 국내업체들은 더이상 증설을 미룰 수 없는 입장이어서 올해 한일 조선업계는 한판승부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지난해 11월부터 세계조선시장에 나온 초대형 유조선(VLCC) 6척을 모두 수주해 지난해 한국에 내주었던 1위 자리를 되찾았다.
그러나 가격은 대당 8천5백만달러선이어서 엔화로 환산하면 91년 선가의 60%에 불과한 헐값이고 국내 업체가 제시한 9천만달러보다 낮았다.
일본은 또 한국이 건조설비 확장을 계속하면 VLCC 도크 15기중 현재 운수성 행정지도로 놀리고 있는 7기를 재가동하겠다고 간접적 경로를 통해 경고하고 있다.
일본은 대외홍보에도 나서 국제회의마다 한국 조선증설문제를 다룬 한일 양국신문 복사본과 최근 일본 해운연구소가 펴낸 10페이지짜리 보고서를 배포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70년대 일본은 유럽의 말을 듣지 않고 연간 건조능력을 2천만t까지 증설했다가 두번의 오일쇼크로 9백60만t까지 설비를 줄였다. 20년이 지난 지금 똑같은 잘못을 한국이 되풀이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등은 이에 대해 『한국의 설비는 80년대 초반부터 일본의 절반인 4백50만t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증설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의 생산성 향상이 벽에 부닥친 상태여서 달러당 1백20엔까지도 한국업체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공자원부 구본룡 조선과장은 그러나 『벼락치기 증설로 일본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며 『생산성과 기술투자비를 먼저 끌어올린뒤 서서히 규모를 늘려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 업계,왜 과민반응 보이나/기후·여건 안맞아 동남아·중 이전 곤란/“한국에 밀리면 끝장” 위기감
일본 조선업계가 한국의 움직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조선업종 자체의 특수성 때문이다.
한마디로 다른 제조업처럼 경쟁력이 밀리면 동남아나 중국으로 탈출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낮 철판 온도가 섭씨 60도 이상 올라가기 때문에 조선 산업은 열대지역에 적합하지 않다. 또 옥외작업이 대부분이어서 비가 자주 와도 생산성이 떨어지며 북구처럼 추운지역에서는 설비투자 비용이 비싸지고 작업시간도 짧아진다.
중국은 기술의 낙후와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회주의체제로 아직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은 설비감축과 생산성 향상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대응해 왔지만 엔고로 분명한 한계가 드러났다. 최근의 저가공세도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전망이다.
그러나 일본 조선산업은 세계최대의 설비와 종업원을 갖고 있으며 고용문제와 지역균형 때문에 경쟁력이 밀린다고 쉽게 조선산업을 감축할 입장이 아니다.
또 전후방 산업연관효과가 큰 조선산업의 특징과 세계 해운 최강국인 일본의 자체 선박수요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생산성은 한국의 두배지만 입금이 한국보다 네배나 비싼 일본업체들이 당분간 경쟁력을 회복하기는 힘들다.
국내업계는 이에 따라 일본이 한국의 신·증설을 극구 문제삼는 것도 2000년까지 무리없이 조선산업을 감축하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 풀이하고 있다. 일본 조선업체들이 그동안 꾸준히 사업 다각화에 나서 조선 전업도를 현재 11%로 줄인 것(한국은 55%)도 장기적으로 조선산업에서의 원만한 퇴출을 위한 포석인 것이다.<이철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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