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재 기자의 웰컴 투 풋볼 <17> 박성화로 모자라 장외룡까지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K리그, 나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지난달 22일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베이징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이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 걸린 플래카드다. 이 문구를 내건 '붉은 악마'는 이날 올림픽대표팀에 대한 서포팅을 보이콧했다.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에 부임한 지 17일 만에 올림픽팀을 맡겠다며 팀을 떠난 박성화 감독과, 그를 빼내 올림픽팀에 보낸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전반 내내 경기장에는 '낯선 침묵'이 이어졌고, 후반 들어 자발적인 응원이 시작됐지만 열기는 예전만 못했다.

한국의 2-1 역전승으로 경기가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장. 국내에서 활동 중인 영국인 축구 전문기자 존 듀어든이 서툰 한국어로 박 감독에게 물었다. "푸산(부산) 팬에게 사과하시겠습니까."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들은 박 감독은 "사과하라고요?"라고 반문한 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매일이라도 사과드릴 생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자리에서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를 모두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말 못할 사연'이 있었음을 말하고 싶어했다.

축구협회가 박 감독에 이어 또다시 '프로팀 감독 빼내기'를 시도하고 있다. 대상은 영국에서 연수 중인 장외룡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다. 이영무 기술위원장이 지난 주말 장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11월 아시아 예선을 시작하는 19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기술위원회에서 장 감독을 '가장 적합한 후보'로 천거했다는 것이다. 장 감독은 "나는 인천 구단의 돈으로 연수를 받고 있으며, 2009년까지 계약이 돼 있다. 고맙지만 사양하겠다"며 고사했다. 그러자 이 위원장은 다시 인천 구단 고위층에 "장 감독이 맡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감독도 박 감독처럼 '말 못할 사연' 속에 징발될 가능성이 있다.

축구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한 축구인은 "베어벡 사퇴와 박 감독 선임 과정에서의 잡음, 그리고 17세 이하 월드컵 예선 탈락으로 협회가 궁지에 몰려 있다. 이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장외룡 카드'를 꺼낸 것"이라고 말했다. 베어벡이 사퇴할 당시 "기술위원장과 위원들도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 위원장은 "일단 새 감독을 뽑아 놓고…"라고 말끝을 흐린 뒤 지금까지 거취에 대해 아무런 얘기가 없다.

축구협회는 대표선수 차출과 관련해 프로 구단과 마찰이 생길 때마다 "프로축구는 대표팀의 젖줄이자 뿌리다.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해왔다. 축구협회가 현재 가져야 할 덕목은 '언행일치'다.

정영재 기자·축구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