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BC 초강수 베팅 성사까진 '산 넘어 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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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외환은행 매각을 둘러싸고 HSBC와 론스타가 한국 금융감독 당국과 정면 대결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HSBC와 론스타가 전격적인 조건부 매각 합의로 금융감독위원회를 압박하는 형세다.

◆HSBC-론스타 '윈윈 전략'=일단 론스타는 외환은행 매각을 서두르는 입장이다. 상당 기간 매각이 진통을 겪으면서 론스타는 외환은행의 영업 확대를 자제해 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외환은행의 실적이 나빠질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값이 올랐을 때 팔고 손을 떼겠다는 것이다.

HSBC는 한국 금융시장을 밝게 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상 마지막 은행 매물인 외환은행을 놓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HSBC는 네 번이나 국내 은행 매입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신중하기로 소문난 HSBC가 이번 건에선 '초강수'를 둔 것도 몸집을 불리지 않고선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HSBC가 제시한 인수대금(63억1700만 달러)은 주당 1만8045원꼴이다. 이는 싱가포르의 DBS가 제시한 주당 1만7400원보다 높은 금액이다. HSBC가 그동안 국내 여러 은행 인수전에서 보여줬던 보수적인 태도에 비춰볼 때 매우 이례적이다. 이런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두 회사가 조건부 인수에 전격 합의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법원 판결이 분수령=그러나 이번 합의가 완전 인수로 이어지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HSBC와 론스타가 이번 거래의 곳곳에 조건을 단 것도 이 때문이다. 거래 성사 조건에는 한국 정부의 승인 외에도 ▶외환은행 사업.자산.경영.채무와 관련해 중대한 부정적 효과가 발생하지 않을 것 ▶2004년 외환은행의 외환카드 합병 관련 소송 결과로 외환은행에 중대한 영업 제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것 등이 포함돼 있다.

HSBC의 외환은행 완전 인수에는 법원 판결이 향배를 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금감위는 외환은행 매각 허용에 신중한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금감위 윤용로 부위원장은 "감사원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 취득 자체를 취소하라는 마당에 금감위가 HSBC의 인수 승인을 검토한다면 자가당착"이라며 "론스타와 HSBC가 한국의 금융당국에 (외환은행 매각에 대한) 부담을 뒤집어씌우며 잃을 게 없는 게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계도 앞으로 HSBC와 론스타가 외국 언론을 통한 여론몰이로 한국 정부를 압박할 공산이 크다고 보고 있다. HSBC에 인수 승인을 내주지 않으면 한국 정부의 반외자 정서를 빌미로 협공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금감위가 이날 "이번 건은 내.외국인 여부를 불문하고 신중히 판단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것도 이 같은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다.

◆국내 은행 "아직 포기 일러"=국민 정서가 어떻게 흐를지도 관건이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에 2조1547억원을 투자해 4년 만에 5조4000억원의 매각차익을 거뒀기 때문이다. 게다가 HSBC가 외환은행 인수에 성공할 경우 국내 은행업계의 판도가 크게 바뀐다. 외환은행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국민은행이나 하나은행의 성장에 제동에 걸리는 반면 HSBC는 기업금융에 강한 외환은행 인수로 일시에 확고한 국내 영업기반을 갖게 된다. 또 국내 시장은 세계 주요 은행의 각축장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국내에는 씨티와 스탠다드차타드 등 세계의 주요 은행이 진출해 있다.

외환은행 인수를 추진해온 국내 은행들은 당황하면서도 아직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일단 법원 판결과 금융 당국의 최종 결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여전히 적극적인 외환은행 인수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하나금융지주 측은 "법원의 최종 판결까지 적어도 2~3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내년 1월까지 HSBC가 감독기관의 승인을 받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안혜리.김창규.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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