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나의집] 6개월 연재 마친 공지영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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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6일 오전. 공지영(43)씨는 소설의 마지막 구절을 써 내려갔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비로소 내가 온전히 혼자라는 것을, 그리고 결단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한창 소설을 구상 중이던 2월에 미리 적어놓았던 문장이다. 작가는 마지막 원고를 보낸 뒤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오후 6시쯤 작가에게 전화를 넣었다. 작가는 엉엉 울고 있었다. “서운하세요?” 물었더니 작가는 “자꾸 눈물이 나와. 멈춰지지가 않아”라며 흐느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수화기 너머에서 울리는 울음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공지영 가족소설 ‘즐거운 나의 집’이 어제 막을 내렸다. 본지 3월 1일자부터 8월 31일자까지 소설은 꼬박 6개월 동안 연재됐다. 일주일에 5회씩, 모두 132회. 200자 원고지 1200여 장 분량이다. 그 사이 작가의 몸무게는 5㎏ 줄었다.

소설은 연재 전부터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았다. 소설은 세 번 결혼하고 세 번 이혼한 뒤 성씨가 다른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였다. 그것도 당대 최고의 인기작가가 처음으로 털어놓는 가족사였다. 독자들은 유명인사의 순탄치 않은 개인사를 은근히 기대했고, 작가는 이혼 가정을 향한 사회 편견과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소설이 연재되던 지난 6개월, 사건도 많았고 사연도 많았다.

연재소설 마감에 맞춰 진행한 인터뷰는, 그래서 “소설 시작 전과 끝난 뒤 무엇이 가장 바뀌었느냐”는 질문에서 출발했고, 작가는 “소설을 연재하면서 내 가족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게 됐다. 내 주변의 많은 것을 정리한 것 같은 기분”이라며 입을 열었다.(※표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위한 설명)

-아이들과의 일화가 여러 번 등장한다. 무엇보다 아이들 반응이 궁금하다.

“연재 전에도 밝혔지만 첫째 위녕의 격려가 있어 소설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다 좋아했다. 둘째 둥빈이 싸움을 해서 둥빈이 담임을 만나러 갔을 때 얘기를 둥빈이가 읽고서 나한테 물었다. ‘엄마, 그때 담임이 이렇게, 왜 학원 안 보내느냐고 얘기했어?’ 고개를 끄덕이니까 둥빈이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예는 숱하다. 우리 가족은 소설을 통해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됐다.”(※소설 속 인물의 이름은 물론 허구다. 몇몇 일화도 사실을 근거했지만 작가의 상상이 보태진 창작의 산물이다)

-아픈 얘기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이 연재되기 전 작가의 전 남편이 본사를 상대로 법원에 소설 게재 및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어떤가.

“그땐 정말 포기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소설은, 충분히 짐작했겠지만 어떤 소설보다 내 자신에게 의미 있는 작품이다. 내 삶에서 하나의 매듭을 지은 듯한 느낌이다.”(※작가의 전 남편이 소송을 걸었을 때 작가는 매우 위태로운 상태였다. 2월 말 자정이 다 된 어느 밤, 작가는 전화를 걸어 “못 쓰겠다”며 울먹였다. “단 한 사람이라도 행복해지길 바라고 소설을 써왔는데 과거의 내 남편이란 사람이 내가 쓰는 소설로 불행해진다는데 굳이 이걸 써야하나 싶어요”라고 그때 작가는 말했다. 그날 밤 작가를 겨우 달랬고, 며칠 뒤 법원은 미완성 창작물에 대한 사상 최초의 게재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화제를 돌리자. ‘즐거운 나의 집’은 연재 내내 높은 인기를 끌었다. 비결을 뭐라고 생각하나.
 
“내가 독자 독후감을 제안했던 것도 주위 반응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특히 평범한 가정의 엄마들이 열심히 따라 읽었다. 이혼 가정의 삶도 평범한 가정과 다르지 않다는 걸 나는 소설에서 말하려 했고, 독자들도 그 부분에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 한 가족이 사는 모습을 일일연속극처럼 잔잔히 묘사한 게 날마다 배달되는 신문의 특성과도 맞아떨어진 것 같다. 중앙일보처럼 보수 성향의 신문이 ‘즐거운 나의 집’을 연재했다는 사실 자체도 나는 중요하게 생각한다. 신문의 영향력은 아직도 대단하더라. 해외동포 반응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 번은 성당에서 만난 독자가 중앙일보 신문을 가져와 사인을 부탁하더라. 세상에, 신문에 사인을 한 건 생전 처음이었다.”(※중앙일보 인터넷 홈페이지 조인스닷컴에 따르면 소설이 연재되는 동안 ‘즐거운 나의 집’은 날마다 많이보기 뉴스 순위 80위 권에 있었다. 특히 오전엔 20위 권 안쪽이었다. 조인스닷컴엔 하루에도 수천 건의 콘텐트가 게재된다. 자신의 블로그에서 ‘즐거운 나의 집’을 자체 연재한 네티즌도 500여 명에 달한다)

-기억에 남거나 공을 들인 장면이 있다면.

“아마도 첫 장면에 가장 공을 들였을 것이다. 소설을 쓰면서 혼자 많이 울었다. 위녕이 혼자 아빠를 찾아가는 장면을 쓸 때 울컥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작가의 이전 작품과 비교했을 때 이번 소설엔 유독 유머가 자주 등장했다.

“쉽지 않더라. 울리는 건 자신 있는데 웃기는 건 정말 어렵더라. 어떠한 난관 앞에서도 즐겁게 사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생각만큼 잘 안 된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가족이란 게 그런 거 같다. 가족을 떠올리면 누구나 아프고 아쉬운 일들이 먼저 떠오르지 않는가. 한 독자가 독후감에서 ‘즐겁지 않은 나의 집’이라고 적었다. 세상의 어떤 가족도 늘 즐겁지는 않다. 그렇게 상처를 보듬고, 때로는 싸우고 부대끼며 사는 게 가족이다.“

‘즐거운 나의 집’은 이르면 10월 말께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현재 드라마나 영화 제작 의사를 밝힌 곳은 열 곳을 헤아린다. ‘즐거운 나의 집 2부’를 쓰는 건 어떠냐고 슬쩍 물어봤다. 한참을 궁리하던 작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위녕이 시집갈 때로 맞추면 괜찮겠네. 한 십 년쯤 뒤로. 그러면 막내도 막 성인이 됐을 거고…. 가만, 그럼 난 몇 살이지?”
 

글=손민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독자 독후감 고3 이희정양 당선

 본지에 답지한 ‘즐거운 나의 집’ 독자 독후감은 모두 286통이었습니다. 초등학생부터 팔순을 앞둔 노인까지 전국의 남녀노소가 독후감을 보내주셨습니다. 미국·프랑스·일본의 교포도 ‘즐거운 나의 집’이 끝나는 걸 아쉬워했습니다.

 독후감 앞에서 본지는 두 번 놀랐습니다. 독후감을 보낸 독자 대부분이 6개월 동안 거의 날마다 소설을 찾아 읽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른바 ‘평범한 가정’의 사연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이혼 가정을 향한 편견을 ‘즐거운 나의 집’이 조금이나마 바로잡았음을 본지는 기쁘게 생각합니다. 독후감 중에서 고3 수험생 이희정양의 사연을 공지영 작가가 골랐습니다. 아래에 그 내용을 약간 줄여 싣습니다. (※표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입니다)

 안녕, 위녕(※소설의 주인공 이름). 수능 시험 끝난 것 진심으로 축하해. 잘 보았든 못 보았든 견디어냈다는 것에 이미 정말 멋지다. 난 서울의 고등학교에 다니는 수험생 이희정이라고 해. 내가 시험이 끝난다면 가장 듣고 싶은 말을 너에게 해봤는데 어때? 사실 정말 해주고 싶은 말은 “부럽다”야. 난 너에게 이 편지를 쓰는 시간에 대해 고민해야 할 정도로 머리 아픈 수험생활을 하고 있는데 넌 그래도 한고비는 넘긴 것 같아서 말이야.
 신문 속의 넌 멀리 사는 친구 같기도 해서 뭐랄까, 단지 수다를 떨고 싶었어. 넌 물론 듣지 못했겠지만 난 매일 아침 신문 1면보다 네 얘기를 먼저 펴서 읽으면서 마음속으로 늘 수다를 떨었어. 사실 주위에서 누군가 이혼했다고 하면, 더구나 그게 여성이라고 하면 내가 여자이면서도 어떻게 했기에 이혼까지 갔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 만약 아이들까지 있는 상태라면 난 더더욱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방방 뛰다가도 한편으로 우리 부모님께 감사하곤 했어. 우리 부모님은 때때로 충돌이 있지만 아직은 조용하게 넘어가시거든. 만약 너를 통해서가 아닌 그냥 어떤 사람으로서 너의 가족 사정을 들었다면 널 불쌍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그러고선 우리 엄마에게 말했겠지. “엄마, 세 번이나 이혼한 작가가 있대. 아이도 세 명이고 말이야.”

 하지만 네 얘기를 들으니 개개인의 사정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히 드라마 속 이혼만 떠올렸던 것 같아. 엄마는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어리석음도, 네 덕분에 깨달았어. 우리 엄마도 내가 수능을 보는 동안 친구라도 만나서 낮술을 즐길 수 있게(※소설에 나오는 대목)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교문 앞에서 덜덜 떨며 기다리고 있는 엄마는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네 말에 폭소했어. 나도 늘 그렇게 말하고 다녔거든.

 너도 느끼니? 네 얘기를 들을 때마다 어린 나도 네가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 나도 네 얘기를 들으면서 조금 더 자란 것 같아 고마워. 가까이 살면 매점이라도 쏘겠는데 아쉽다. 남은 10대, 우리 더 크자! 그래도 미모는 챙겨야 한다 . 안녕.

멀리 사는 친구 같은 위녕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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