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단은 무협도장인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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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들은 마치 무협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무사들 같았다. 웃통을 벗고 발길질하며 난투극을 벌이는 이들이 과연 누구인가. 한국 최대의 종교단체를 이끌고 있는 조계종단의 집행부측과 그것의 개혁을 요구하는 이른바 종단 개혁파들이다. 사악과 탐욕에서 인간을 구제하고,사회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할 종교단체가 어째서 이런 유혈난투극을 벌이는 주역이 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이유로는 현 종단집행부의 부도덕성과 부정을 파헤치고,현 총무원장의 연임을 저지하자는 세력과 현 종단을 지지하는 세력간의 충돌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오랫동안 불교계 속사정에서 본다면 종권을 둘러싼 권력투쟁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는 현 종단이나 반종단 세력들이 분명 종교인이라고 볼 수 없는 치졸하고도 탐욕적인 혼전투구식 싸움에 매달려 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사건의 발단이 개혁이든,권력다툼이든 우선 그 진행방식이 너무나 속물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사실에 속인들마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또 이런 난투극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종단 선거가 있을 때마다 벌어지는 상습적 유혈극이라면 여기에는 현 종단의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볼 것이며,종권을 둘러싼 깊은 암투가 뿌리깊게 스며있다는 의심도 지울 수 없다.
불교계의 뿌리깊은 비리와 부정은 결국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을 쏟는 일부 승려들이 종단을 장악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무엇이 잿밥 싸움인가. 결국 종권 다툼이다. 종권이란 인사권이다. 총무원장이 장악하고 있는 본사 주지의 임면권이다. 이 주지임면권은 사찰 대표로서의 주지라는 명예와 시주금·사찰수입금이라는 돈과 연결된다. 돈과 명예를 안겨주는 이 잿밥을 둘러싼 길고도 질긴 싸움이 종권 다툼으로 나타나고,유혈난투극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세속 사회의 범인들마저 불교계의 난마같은 내부 투쟁이나 잿밥 싸움을 이해하기 어렵다. 어째서 세속적 욕망을 버리고 무소유의 탈속인이 되기를 자청한 승려들이 세속의 굴레에서 한치도 발을 빼지 못하고 있는지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다.
종교계의 개혁이란 비폭력으로 철저한 자정운동을 통해 개혁의 명분과 지지를 쌓아가야 할터인데 어째서 툭하면 각목이고,휘발유까지 동원되는지 그 까닭을 이해할 수 없다.
많은 속인들은 불교계가 새로운 각성과 개혁을 통해 염불보다 잿밥에 정신쏟는 종단 풍토가 개선되고,탄허 성철스님으로 이어지는 고결한 불교정신이 종단을 지배하는 맑은 기운으로 자리잡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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