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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연봉 1억’ 그러나 공짜는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입사하자마자 억대에 가까운 연봉을 받는 신입사원이 있다. 외국계 금융회사에 발을 디딘 대한민국 젊은이들이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 ‘공짜 점심’이 있으랴! 채용된 후부터는 매일 강행군의 연속이다. 그 실상을 완전 해부한다.


세계적 금융회사인 메릴린치 한국지사에서 주식파생부 트레이더로 근무하는 1년차 신상훈(28) 씨. 그의 알람은 새벽 5시 반에 울린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졸음과 싸워야 하는 아침시간이 괴로웠지만, 요즘은 자동으로 눈이 떠지는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하다.

월간중앙 회사에 들어서며 시계를 보니 6시 반. 아직 출근한 사람이 많지 않아 사무실은 썰렁한 분위기다. 그렇다고 여유로울 틈은 없다. 자리에 앉자마자 간밤의 미국시장 데이터를 꺼내 동향을 분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리서치 담당자들이 밤새 작성한 리포트도 읽어야 한다. 헤드라인만 읽어 내려가다 중요한 보고서라고 판단할 경우 밑줄을 그어가며 세세한 부분까지 읽는다. 그리고 경제신문 두어 개 휙휙-.

회사에서의 시간은 분·초 단위로 움직여도 모자란다. 1시간 동안 바쁘게 자료를 검토하고 나면 7시 반부터는 전 세계 메릴린치 관계자와 30분가량의 ‘콘퍼런스콜(전화회의)’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시장에 관심이 있는 전 세계의 리서처 및 트레이더들이 자유롭게 참여해 오늘의 시장을 예측하며 정보를 교환한다.

그 흔한 유학 한 번 가본 적 없는 순수 국내파인 신씨지만 영어로 진행되는 회의라고 기죽는 일은 없다. 카투사에서 복무하며 말문을 텄고, 서울대 재학 시절 스튜던트 앰배서더(Student Ambassador·학생대사)로 활동하며 실력을 쌓았기 때문이다. 이후 교포 출신 친구들 틈에서 부지런히 귀동냥을 했더니 실력이 더 늘었다. 이제 그의 영어 실력은 세계 각국의 동료들과 전화로 의사를 소통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전화회의 시간이면 신씨는 새삼 뿌듯함을 느낀다. 세계 금융시장 전체가 자신의 일터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팅에 들어가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신씨는 출근시간을 앞당겨서라도 꼭 이 전화회의에 참석한다.

회의를 끝내고 나오니 상관들이 출근해 있다. 아침에 본 자료와 회의에서 얻은 정보를 종합해 간략히 보고한다. 윗사람들은 방금 나와 앉아 있는 것 같은데도 웬만한 정보는 이미 다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역시 고수는 다르다고 하는 것일까?

그들은 집에서도 CNBC·CNN이나 국내 경제 뉴스를 항상 주시하며 정보에 대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이리라. 자료의 헤드라인만 봐도 정보의 경중을 가려내는 상관의 날카로운 분석·판단력에 속으로 감탄사를 연발한다.

오전 9시에서 오후 3시까지 ‘죽었다’ 생각하고…

이제 시간은 8시 반. 슬슬 전투태세에 돌입해야 할 때다. 9시에 장이 시작되기 때문에 컴퓨터 세팅 상태를 점검하는 등 본격적으로 전장에 나설 준비를 한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3, 2, 1! 드디어 개장이다. 자료와 정보로 무장하고 마음도 굳게 먹었지만 각 증권사로부터 쏟아지는 전화와 시시각각 변하는 12개의 모니터 앞에서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손에는 축축하게 땀이 배고 입안은 바짝바짝 타 들어간다. 숨에서는 벌써 단내가 풍긴다.

모니터에 뜬 숫자들은 그냥 숫자가 아닌 화폐 단위다. 0 하나만 잘못 기입해도 몇 억 원이 날아가기 때문에 약간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다. ‘정신 바짝 차리자!’ 속으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모니터를 노려보는 눈에 핏발이 선다.

옆에서 보는 사람은 ‘그저 앉아서 손만 빨리 놀리는 일인데 무엇이 그리 힘드나’ 하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한가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시시각각 증권사로부터 전해지는 정보들, 계속 변하는 주가의 움직임, 머릿속으로 예상해 보는 앞으로의 변화, 이 모두를 종합해 의사결정을 내리고 신속히 움직여야 한다. 1초의 지체가 얼마의 손해를 불러올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누군가가 말했다. 이 바닥의 일은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 일과시간 내내 지속되는 높은 업무 강도를 견디기가 버겁다고…. 갑자기 주가가 뚝 떨어지기라도 하면 손가락은 ‘백만 달러짜리 사나이’의 그것이 되어 ‘빛의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개장 시간인 오전 9시에서 오후 3시까지는 ‘죽었다’ 생각하고 주식 매수와 매입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화장실 가느라 자리를 비우는 것조차 어렵다. 입에 빵을 물고 침으로 녹여 가며 먹는 것으로 점심식사를 때운 적도 있다.

밥보다 일에 집중하다 보니 도시락 하나 먹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른다. 하기는 전장에 뛰어든 셈인데 밥이 제대로 먹히겠는가?

오후 3시, 폐장 시간. 드디어 오늘의 전투가 끝났다. 한숨 돌리려고 15분쯤 쉰다. 3시에 폐장이라고 해서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늘 내가 얼마를 벌었고 얼마를 잃었는지 포지션을 정리해야 한다. 하루에 여러 가지 거래를 하기 때문에 총괄적인 계산을 해 보는 것이다. 하루의 결과물을 분석하는 데 꼬박 1시간 반이 걸린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다. 오직 자신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일 뿐.

퇴근시간이 지나고 선배들은 하나 둘 회사를 떠나지만 신씨 자리에 켜진 불은 꺼질 줄 모른다. 내일의 투자 전략을 세우기 위해 회사에 남아 자료를 뒤적거린다. 자기계발을 위해서라는 생각 때문에 피곤함보다 보람을 더 느낀다.

그러나 갓 회사에 들어왔을 때와 달리 요즘은 밤을 새우거나 새벽까지 회사에 있는 일은 되도록 자제한다. 개장시간 동안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 밤시간에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함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들기 전까지도 머릿속에서는 일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아, 그때 그 주식을 샀으면…’ ‘내일 투자 전략은 이렇게….’ 이 생각 저 궁리로 뒤척이다 잠에 빠진다.

이런 하루가 비단 메릴린치 신상훈 씨에게만 해당하는 것일까? 세계시장을 무대로 뛰는 외국계 금융회사의 신입사원들. 파격적인 연봉을 받으며 근무하는 대다수 그들이 숨막히는 일과를 보내고 있을 터다.

▶ 메릴린치 주식파생부에서 트레이더로 일하는 신상훈 씨.

고액연봉, ‘고된 일과’ ‘사전투자’에 대한 보상

그들의 연봉을 도매금으로 같이 분류하기는 어렵다. 회사별, 업무별로 차이가 커서 어느 정도 수준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힘들지만 우리나라 금융기업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받는 것이 사실이다.

외국계 금융권 종사자와 헤드헌팅 업체 관계자가 전하는 이들 신입사원의 연봉은 적으면 6,000만 원, 많으면 1억 원이며 보통은 그 사이다. 다만 담당하는 업무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성과급)가 주어지는 경우 연봉 액수는 무의미해진다. 능력 있는 사원이 신입 때부터 많은 수익을 올린다면 엄청난 인센티브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마치고 입사한 신입사원들은 학부나 다른 대학원을 졸업한 사원들과 대우가 다르다. MBA 과정 자체를 다른 기업에서 근무한 것처럼 일종의 경력으로 쳐줘 다른 신입사원보다 2,000만~3,000만 원을 더 받게 돼 1억 원을 훌쩍 넘는 경우도 있다.

대학시절 한 외국계 증권사에서 인턴을 하다 졸업 후 외국계 투자은행(IB)에 입사한 김모 씨의 말을 들어보자.

“MBA를 갔다 오면 일단 10만 달러(약 9,200만 원)는 받는다. 물론 여기서도 학벌에 따른 차이가 있는데, 대부분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학교의 MBA를 갔다 온 사람들이다. 학부나 다른 대학원을 졸업한 신입사원의 경우 그 회사와 자기가 맡은 업무에 따라 초봉이 천차만별이다.”

이쪽 분야에서 연봉은 기밀 중에서도 특급 기밀이다. 자신의 능력을 수치화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회사 측이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한 외국계 IB은행 홍보 담당자의 말이다.

“아무래도 다른 직장에 비해 월등히 높아서… 연봉이 드러나면 다른 사람들은 거부감이 들 수 있으니까요. 물론 동료 직원들끼리도 꼭 지켜야 할 보안사항이고요.”

최고의 엘리트들만 뽑는다고 해도 그들 역시 신입사원이다. 회사는 무엇을 믿고 이들에게 그런 고액 연봉을 주는 것일까? 헤드헌팅 업체 ‘카푸스 파트너스’ 서현철 전무의 말이다.

“외국계 금융회사 사원들은 자기 손으로 수백억 원, 많으면 1,000억 원대의 돈을 매일 굴린다. 자칫 실수하면 그 큰 돈이 날아갈 수도 있고 수익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도 크다. 그런 압박감을 이겨내며 냉정하게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인재를 구하려면 ‘높은 연봉’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사실 외국에서 유학한 신입사원의 경우 해외에서 공부하기 위해 자신에게 몇 억 원의 돈을 투자한 셈이다. 그런 인재들을 고용하기 위해 회사가 억대 연봉을 제시하는 것이다.”

한 외국계 투자은행의 인사 담당자는 “우리 회사 미국 본사에서 일하는 신입사원은 한국에서 근무하는 사원보다 30% 정도 더 많이 받는다. 세계적인 기준에서 보면 결코 많은 액수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파격적 연봉을 받고 근무하는 외국계 금융기업의 신입 애널리스트·리서처·트레이더들. 이들에게 주어지는 고액 연봉은 결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자신이 받는 것 이상의 성과를 내기 위해 누가 지켜보거나 압박하지 않아도 동분서주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고급 넥타이를 꽉 조여 매고 은테 안경을 쓴 이지적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 만나본 그들에게서는 땀냄새가 났고, 고된 근무에 지쳐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있었다.

외국계 투신운용회사인 프랭클린템플턴에서 일하는 백상훈(35) 씨. 그에게 신입사원 시절의 ‘혹독한 추억’을 들었다. 차분하고 단정한 인상의 그도 갓 회사에 들어왔을 때는 스트레스와의 싸움에 지쳐 몸이 남아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 ‘다른 회사로 옮길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죠. 시간이 지나니 몸이 힘든 것은 금세 익숙해지더라고요. 제일 힘든 것은 스트레스로 인한 마음고생이었죠.”

백씨는 현재 채권 트레이더로 일하며 회사채 펀드를 운용한다. 입사 초기, 펀드 운용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2003년에 그는 머니마켓펀드(MMF)를 맡았다.

“MMF는 당일 설정해 당일 환매할 수 있는 펀드입니다. 고객이 갑자기 1,000억 원씩 돈을 빼겠다고 나서도 펀드를 사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가격을 내려 불이익을 감수하고 팔아야 했죠. 장부가 평가하는 펀드고 투자 금액에 대해 일정 수익률을 보장하는 상품이어서 손실이 나면 이것이 그대로 반영돼 쩔쩔매기도 했고요. 고객뿐 아니라 판매사인 은행에서 컴플레인(불만)이 들어오고…. 그럴 때는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죠.”

연봉 많다고? “상대적일 뿐”

자신이 운용한 펀드가 손실이라도 난 날에는 ‘어떻게 메우나’ 하는 생각에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는 백씨. 자신뿐만 아니라 펀드매니저라면 누구나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수익률에 대한 압박, 고객들의 불만, 판매사의 재촉, 상사의 무언의 눈치…. 가시방석에 앉아 무거운 돌덩이를 짊어진 기분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한 펀드매니저는 “사실 고액 연봉이라고 주위에서 말하는데, 받아도 쓸 시간과 여유가 없다. 고된 일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면 꼭 고액이라고만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백씨 역시 입사 초기에는 스트레스를 잘 풀지 못해 신경성 위염에 걸리기도 했다. 주변의 펀드매니저들은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폭음하거나 폭식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주변 사람들은 ‘고액 연봉’을 받는 이들을 선망의 눈으로만 바라보지만 정작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짜는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회사는 신입사원에게 과감하게 투자하고 그 이상의 성과를 요구한다. 높은 연봉은 그만큼 성과가 커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과 같다. “꿈에서조차 일에 시달린다”는 한 신입사원의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살인적 업무 강도에 시달리다 보니 점심식사도 남다르다. 메릴린치에서 일하는 신씨의 경우 장중에는 일터를 떠날 수 없는 트레이더이기 때문에 항상 컴퓨터 앞에 앉아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해결한다. 금융회사는 아니지만 엄청난 업무 강도로 유명한 컨설팅 회사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세계적 경영 컨설팅 회사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3년째 일하는 김민지(25) 씨. 그에게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해결하는 점심은 이제 당연한 일과다.

“일이 많으면 밥 먹는 시간이 늦어지기도 하죠. 점심은 보통 간단하게 샌드위치나 도시락을 시켜 회사 안에서 먹는 경우가 많아요.”

▶ 프랭클린템플턴에서 채권 트레이더로 일하는 백상훈 씨.

“시간 아깝다!” 점심은 회사에서 간단히 해결

JP모건에서 거시경제 리서치 업무를 담당하는 김유나(27) 씨는 월요일 점심 때마다 회의실로 향한다. 부서 전체가 회의를 겸한 점심식사를 매주 월요일에 회의실에서 하기 때문이다. 부서 내에는 영업·리서치·트레이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각각 정해져 있다. 월요일 점심은 이렇게 업무가 분화된 사람들이 모두 모여 의견을 공유하는 시간으로 활용한다.

월스트리트의 금융맨들이 샌드위치나 핫도그로 점심을 때우는 문화가 우리나라 지사에도 영향을 미친다. ‘바빠도 밥은 챙겨먹는다’는 일념으로 인파를 뚫고 식당으로 줄지어 가는 우리나라 직장문화와 사뭇 달라 보인다. 그들은 하루가 48시간이라도 모자라는 상황에서 점심시간도 알뜰히 쪼개 쓰고 있었다.

조금 시각을 바꿔 생각해 보자. 외국계 회사들이 신입사원들에게 주는 연봉을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하고, 그들이 내는 성과를 ‘산출’이라고 본다면 이들은 굴지의 금융기업답게 이득 보는 장사를 하는 셈이다. 이들이 벌어들이는 돈을 일일이 따져 계산해 보면 결코 ‘연봉이 많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메릴린치에서 일하는 신상훈 씨의 말을 옮겨 보자.

“이쪽 업계 사람들이 연봉을 너무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인간이 낼 수 있는 최대 효율을 냅니다. 우리 사무실에서 2명의 직원이 담당하는 일을 다른 회사에서는 10명이 담당해요. 우리 회사 직원 1명이 5명의 몫을 내도록 열심히 뛰고 있다는 말이죠.”

메릴린치에서 20명 남짓 근무하는 한 부서가 1년 동안 버는 돈이 우리나라 모 은행의 1년 매출액을 넘어선다. 주먹구구식으로 생각해 봐도 한 명의 고액연봉자가 5명의 평범한 사원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고의 대우를 해 주고 그만큼 능률을 올리기를 요구하는 것이 외국계 회사의 방식이라고 업계 종사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또 하나, 외국계 금융회사의 공통된 특징은 ‘일단 믿고 맡긴다’는 것이다. JP모건 투자은행 업무를 담당하는 송창빈(30) 과장은 “국내 은행과 증권사에 근무하는 다른 친구들이 아직 사원이나 대리로 근무하며 바닥부터 배울 때, 나는 거래 회사의 핵심 인사와 일하며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일조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신입사원이 100억 원대의 돈을 운용하는 것도 이곳에서는 놀랄 일이 아니다. 메릴린치에서 트레이더로 일하는 신씨가 현재 하루에 운용하는 돈은 1,000억 원에 이른다. 리서치 파트도 사정은 비슷하다. 신입사원들이 밤새 자료와 데이터를 분석해 시장을 예측하면 이것이 곧 회사의 의견이 되어 투자자들에게 바로 전해진다. 위험하다면 위험한 시도이지만 회사 측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밥값을 해내는 인력으로 키우기 위해 과감하게 업무를 맡긴다. 레주메(이력서)를 제출했고 여러 번의 인터뷰(면접)를 거쳐 뽑힌 사원들이다. 금융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갖추고 있고 영어가 업무에 어려움을 주지 않는 수준은 된다. 회사는 이들의 잠재적 가능성을 믿기에 당장은 서투르더라도 실무에 투입하고 본다. ‘실전만한 연습은 없다’는 것이다.

성장 가능성 있는 사원을 뽑기 위해 회사는 철저한 검증을 거친다. 지원자가 제출한 레주메가 통과되면 그때부터 길고 긴 인터뷰 과정이 시작된다. 회사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길면 최종 합격까지 두 달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심지어 합격하기까지 10번의 인터뷰를 했다는 사람도 있다.

먼저 회사 해당 부서의 실무자가 인터뷰하고 그 부서의 최고책임자가 또 인터뷰한다. 이런 식으로 점점 고위직 사람과 인터뷰하는데, 최종적으로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있는 아시아 총괄지사에서 전화가 걸려와 인터뷰하는 경우도 있다. 홍콩 지사 관계자와의 인터뷰는 당연히 영어로 진행된다. 세계 굴지의 모 투자은행에 이력서를 냈던 한 지원자는 “밤 11시에 홍콩지사에서 전화가 걸려와 당황했다. 밤이라서 목이 잠겨 영어 발음도 잘 안 나왔던 것 같다”고 경험을 밝히기도 했다.

두 달 동안 고르고 골라 인재 뽑는다

국내 회사와 다른 점은 채용 과정에서도 효율성을 염두에 둔다는 것이다. 지원자가 자기 회사에 딱 맞는 적임자라는 확신이 들면 인터뷰 과정이 남았어도 바로 채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이고, 대부분 면접관들이 모두 채용에 찬성해야 합격한다. 인터뷰를 통해 금융에 대한 전문지식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영어 실력은 어느 수준인지 알아보는 것이다. 총자산순이익률 계산법을 묻는 등 구체적인 질문도 튀어나온다.

최고의 대학을 졸업해 최고로 불리는 직장에서 근무하는 외국계 금융회사 신입사원들. 그러나 높은 연봉이 이들에게 핑크빛 미래를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일에 혹사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해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해 빨리 퇴직한 후 자기 사업을 꿈꾸는 이도 많다. 다시 메릴린치에서 일하는 신씨의 말을 들어보자.

“연봉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돈만 보고 일하다가는 나중에 허무함을 느낄 것입니다. 성과급을 노리다 아주 위험한 트레이드를 할 수도 있고요. 돈을 많이 벌려는 사람보다 돈의 흐름을 쫓고 회사 수익률이 올라가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이 직장에 더 맞아요.”

오늘도 외국계 금융회사 건물의 불빛은 새벽까지 꺼지지 않는다.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선망의 눈길을 보낼 뿐,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 흘리는 땀은 모를 것이다. 자신의 몸값, 그 이상의 성과를 내기 위해 오늘도 이들 회사의 신입들은 고군분투한다. 인재들의 땀방울에 연봉 1억 원이 아까우랴.

외국계 금융권 신입사원들이 전하는 ‘입사 노하우’

“인맥 활용이 지름길… 열정 과시하며 활력 보여야”

취업문이 바늘구멍만하다는 요즘, 외국계 금융권에 취업하기는 낙타가 그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회사가 있는 한 채용도 있는 법. 높은 회사 문턱을 넘은 신입사원들에게 취업 성공 비법을 캐물었다.

1. 기본부터 갖춰라!

외국계 금융권 취업을 위해서는 기본으로 갖춰야 할 부분이 있다. 제일 먼저 영어. 원어민 수준까지는 어려워도 회사생활 내내 영어를 구사할 수 있을 정도는 돼야 한다. 면접 과정에서도 영어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외국에서 연수하거나 유학한 경험이 없다고 좌절하는 것은 금물이다. 실제로 업계에서 만나본 사람 중 절반 이상이 한국에서 영어를 공부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금융에 대한 중간 이상의 지식은 갖춰야 할 것. 입사 후 바로 실전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2. 인적 네트워크는 필수!

외국계 금융권은 공채가 극히 드물다. 보통 국내 금융사에서 경력을 쌓은 사람을 뽑거나 내부에서 추천받아 레주메(이력서)를 접수한다. 결국 이 업계에 아는 사람을 많이 확보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절실하다. 아는 사람이 업계에 있다면 집요할 정도로 캐물어야 한다. “빈 자리 없나요?” 하고….

3. 인턴 하며 승부수 띄울 필요

관련 업계 지인이 없다면 이쪽 업계에서 인턴을 하거나 하다 못해 서류 정리 아르바이트라도 구하자. 인턴이라고 대충 때우다 보면 관련 업계에서는 발 붙이기 힘들 것이다. 정보가 대다수 회사에 공유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착실하게 아르바이트나 인턴을 하다 보면 레주메를 내 보라는 권유를 받을 수 있다.

4. 열정을 보여줘라!

열정은 천금과도 같은 자산이다. 외국계 금융사라고 해서 그 사람의 능력과 학벌만 평가하지는 않는다. 워낙 일이 고되고 체력을 요하기 때문에 면접관들은 지원자가 의욕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한다. 지원한 회사가 그 동안 어떤 일을 해왔는지도 충분히 알아야 한다. 회사에 대한 관심이 곧 애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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