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좋은 나라(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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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6세기 영국 정치가인 토머스 모어가 만들어낸 「유토피아」(이상향)란 말은 희랍어의 ou(not)와 topos(place)가 합쳐진 것으로 「아무데도 없다」는 뜻이다. 곧 유토피아는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유토피아』란 저서로 유명해진 모어경은 헨리8세에 의해 일약 대법관에 임명되지만 그의 저서가 정치·종교적으로 차츰 문제가 되면서 반역죄로 몰려 오랫동안 런던탑에 감금됐다가 마침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것도 「유토피아」와 관련된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지만 이상향을 다룬 문인이나 사상가들의 공통점은 인간의 본질과 운명에 대한 하나의 청신한 비전을 제공하기 위해 우리가 늘 겪고 있는 전통과 인습의 굴레로부터 인간을 끌어내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법론에 있어서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것이 혁명적인 것이냐,반동적인 것이냐로 크게 구별된다. 모어경의 유토피아론이 혁명적인 것이었음에도 권력자에 의해 반동적인 것으로 간주된 것이 좋은 예다.
이론적으로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유토피아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정설이다. 과학문명의 발달로 유토피아사회는 본질상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여년전 미국 인디애나주 하머니에 건설된 현실적인 유토피아사회가 산업의 발전에 밀려 자취를 감춘 사실이나,유토피아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이스라엘의 키부츠를 과연 현대적 의미의 유토피아로 간주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 따위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나라가 더 살기 좋으냐는 「삶의 질」에 관한 국가간의 상대적 비교평가는 늘 흥미롭다.
최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세계 22개 주요국가에 대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4개 부문에 걸쳐 실시한 「살기좋은 나라」 조사에 따르면 1위의 스위스를 필두로 독일·스페인·스웨덴 등의 순이며 한국은 18위에 머물고 있다. 세계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했다면 그 순위가 어떻게 나타날는지 궁금하지만 22개국 가운데 18위라면 비교적 낮은 수준이다. 사회·문화부문이 상위인데 비해 경제·정치부문은 하위로 처진 것도 음미해 볼만한 대목이다. 그래도 한국을 유토피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주 없지는 않을테니 위안으로 삼아야할까,불공평하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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