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범위싸고 여야 “입씨름”/시장·도지사 사전선거운동 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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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모두 출마예상자… 업무수행은 핑계”/야/“시행령 미비로 혼선” 선관위에 전가/여
깨끗한 선거를 내세운 새 선거법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김영삼대통령 측근들이 잇따라 사전선거운동 시비에 휘말려 정부·여당이 난감해하고 있다.
상도동 측근 출신인 최기선 인천시장과 민주산악회 본부장을 지낸 박태권 충남지사는 문제가 된 도정 및 시정보고회 향응·선물에 대해 「통상업무」라고 항변하고 있으나 아무래도 궁색하다.
두사람 모두 내년 단체장선거에 여당 대표주자로 나설게 거의 틀림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즉각 성명을 발표,『대통령 측근들에 의한 반개혁적 작태』라고 공격을 개시했다.
최 시장과 박 지사는 『내년에 있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최 시장의 경우 지난달 16일부터 각 구청을 돌며 통장 및 자유총연맹 등 15개 사회단체 회원 6천9백명을 대상으로 시정설명회를 연뒤 우산 3천4백여개와 시계 1백여개를 나눠준게 말썽이 됐다. 그는 『4년전부터 시민들의 시정동참을 적극 유도하기 위한 일선 행정기관 일상업무의 일환』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박 지사는 23일 밤 충남출신 공직자 1천여명을 서울시내 하림각으로 초청해 「고향의 밤」 행사를 열며 음식을 대접한뒤 5만원 상당의 선물을 제공하고 『열심히 할테니 도와달라』는 당부까지 했다고 한다. 그 역시 『4년전부터 전임자들이 해오던 관행』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측은 『두사람은 내년 단체장선거 출마가 예상되는 사람들』이라며 『직함까지 새겨진 우산 등 선물을 돌린 행위는 업무를 빙자한 명백한 사전선거운동』이라고 공박했다. 『더구나 이들의 행위는 김 대통령의 깨끗한 정치풍토 구현의지에도 역행하고 있는 일』이라며 김 대통령에게 읍참마속(해임과 검찰수사)을 요구했다.
민자당쪽에선 방어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문정수 사무총장은 『나도 몇년전 부산시장이 서울에서 도정을 설명하는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며 『시장이나 도지사가 지역유지 등에게 협조를 구하는 모임을 마치고 식사와 선물을 제공하는 일 등은 업무수행이자 관행』이라고 적극 두둔하고 나섰다.
문 총장은 『선관위 등 행정부가 사전선거운동의 범위와 한계 등을 포함한 선거법 시행령과 세부시행규칙을 조속히 마련하지 않아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더구나 이 때문에 공무원들이 적극적인 업무수행을 못하고 복지부동케 할 우려가 있다』고 화살을 선관위에 돌렸다.
민자당 하순봉대변인도 25일 성명을 통해 『민주당이 관행적인 통상활동을 마치 사전선거운동을 하는 양 비방하고 있다』며 『민주당은 사전 흑색선전을 중지하라』고 오히려 역공을 취했다.
이들의 위법성 여부는 물론 선관위에서 가려질 일이다. 중앙선관위는 25일 박 지사와 최 시장이 선물을 돌린 통장 및 지역단체 회원들이 모두 지역유권자들이어서 사전선거운동 혐의가 짙다고 보고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중앙선관위가 과연 얼마나 실효성 있는 조치를 내릴지는 미지수다. 선관위는 이에 앞서 23일 전체회의를 열고 관내 취학아동들에게 자신의 직책·이름이 기록된 책받침 등을 선물한 서울의 4개 구청장들에 대해 주의조치만 내린 전례가 있다.
당시 선관위는 『직무행위의 일환으로 보기 어렵다』면서도 구법이 적용된다는 이유로 새 통합선거법에 따른 중징계조치를 피했다. 그러나 박 지사나 최 시장의 경우 새 선거법이 공포된 3월16일이후라는데 문제가 있다.
박 지사는 3월23일 선물을 배포했고 최 시장의 경우 지난 2월26일부터 행사를 해오면서 선거법 공포이후까지 계속돼 왔다는 것.
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구청장 4명중 3명은 출마가 예상되는 사람들로 혐의가 짙었지만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에 대한 염려 등을 고려,격론끝에 어정쩡한 조치를 내린 것』이라고 실토했다.<김기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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