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문화로 본 인질 석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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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외국인 여성 인질과 라마단(단식월)을 함께 지내는 것은 독실한 무슬림(이슬람교 신자)에겐 말도 안 되는 행동이다."

이집트 카이로 아메리칸대학의 왈리드 카지하(정치학) 교수는 "다음달 13일 전후에 시작되는 이슬람권의 최대 축제 라마단을 앞두고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가 해결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말했다. 탈레반이 그토록 주장해 오던 '인질-수감자 맞교환' 요구를 철회하고, 특별한 추가 조건을 제시하지도 않고 한국인 인질 전원 석방을 결정한 배경에는 2주 앞으로 다가온 라마단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 달 동안 해가 떠 있는 시간에는 음식은 물론 물도 마셔선 안 되는 라마단의 의무가 탈레반 측을 심리적으로 압박했다는 지적이다. 이 기간에는 성생활은 물론, 마음속에서 이성에 대한 생각도 지워야 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남성 무슬림은 여성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가족이 아니면 여성에게 말도 거의 걸지 않는다. 단식월의 신성함이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슬람 원리주의를 신봉한다는 탈레반이 이런 종교적 지침을 깨고 24시간 여성 인질을 감시하고 먹을 것을 챙겨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무슬림은 이 기간 동안 거의 가족과 같이 지낸다. 그러므로 탈레반 대원들에게 가족과 떨어져 외국 여성을 감시하라고 지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범아랍 일간지 알하야트는 28일 "탈레반 지도부가 대원들에게 종교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이미 일주일쯤 전에 인질 석방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라마단은 또 축제의 기간이다. 거의 매일 친지와 이웃을 불러 밤새 저녁과 파티를 즐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부들은 라마단을 위해 미리 음식과 생필품 사재기에 나선다. 이 때문에 라마단을 앞두곤 물가가 폭등한다. 27일 탈레반이 인질 음식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언급한 것은 이 때문으로 보인다.

결국 라마단을 앞두고 인질 석방 결정은 이미 내려졌고, 다만 납치와 억류를 담당한 탈레반 가즈니주 지역사령부와 대원들의 보상문제 해결을 위해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 알하야트를 비롯한 아랍 언론의 분석이다. 인질 석방 협상이 진행될 경우 '몸값 거래'는 중요하고도 필수적 단계라는 것이 중동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아프간에서 발생한 외국인 인질 석방 협상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결말이 났다.

서정민 중동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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