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비수기 예술영화 작품성 높아 영화팬 색다른 맛볼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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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관객이 뜸해지는 3,4월 극장가에 그동안 흥행성이 떨어져 외면받던 예술영화들이 대거 개봉된다.
『책 읽어주는 여자』(프랑스.미셸 드빌감독),『소피』(덴마크.리브 울만감독),『밤 그리고 도시』(미국.어윈 윈클러감독)등작품성은 인정받았지만 개봉되지 못하던 수준작들이 이번주와 다음주말에 잇따라 선보인다.
3,4월은 겨울방학과 설을 낀 극장가의 호황이 끝나 1년중 가장 관객이 적은 기간이다.이때는 대체로 흥행성이 높은 영화들이 개봉을 기피,그동안 영화사 창고에서 잠자고 있던 예술영화들이 대거 선보일 기회를 맞게된다.고급영화팬들에게는 색다른 영화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1년중 가장「짭짤한 계절」이 된다.
88년 몬트리올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인『책 읽어주는 여자』는 국내에도 번역된 바있는 레이몽 장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유리세공을 보는듯한 섬세한 감각이 재치있게 묘사된 영화다.
책 읽어주기를 직업으로 삼은 젊은 여주인공 마리가 방문하는 집집마다에서 여러 유형의 인간을 만난다는 내용.
그녀는 반신불수 사춘기소년,레닌을 숭배하는 장군부인,이혼한 회사 사장등에게 모파상.마르크스.사드.뒤라스등을 읽어주면서 그들과 함께 묘한 세계로 빠져들어간다.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등 배경음악이 인상적.주연은 미우 미우가 맡았다.
『소피』는 잉그마르 베르이만의 영화에 자주 출연해 유명해진 노르웨이 출신의 세계적인 여배우 리브 울만이 감독으로 데뷔한 92년도 작품.19세기말 덴마크의 부유한 유대인 상인의 딸로 태어난 소피가 거듭되는 좌절을 거쳐 정신적으로 성 숙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묘사한 이 영화는 전통과 인습의 굴레에서 한 인간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그리고 있다.배우경력 35년이 넘는 울만의 성숙한 안목이 돋보이는 영화로 소피역을 맡은 카렌 리스 민스터의 연기도 좋다.
미국영화 최고의 연기파인 로버트 드 니로와 제시카 렌지가 주연을 맡은『밤 그리고 도시』는 50년 줄스 닷신감독이 런던을 무대로 만들었던 영화를 어윈 윈클러감독이 뉴욕을 배경으로 다시만든 작품.윈클러감독은『록키』『좋■ 친구들』같은 영화로 유명한제작자 출신으로 이번이 두번째 작품이다.
악덕 변호사가 한판을 크게 벌일 생각으로 권투 프러모터로 나섰다가 결국 실패하고 만다는 내용이다.대도시 뒷골목에 사는 인간들의 헛된 욕망을 냉소하면서도 그들의 삶에 대한 의지 자체는애정을 담아 묘사하고 있다.
인텔리라기 보다는 사기꾼에 가까운 변호사역을 드 니로가 빈틈없이 연기해내며 뉴욕이라는 도시의 살아움직이는 듯한 힘을 잘 포착한 카메라웍도 훌륭하다.
〈林載喆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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