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 이명박 만남' 세 시간 남겨놓고 불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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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28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의 한 식당에서 열린 상임고문단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조용철 기자]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전 총재의 28일 만남이 무산됐다.

이 후보는 이날 오후 2시 이 전 총재의 남대문 사무실로 찾아가기로 했었다. 그러나 약속 시간을 불과 세 시간여 앞두고 이 전 총재가 일신상의 이유를 들어 약속을 취소했다.

이 후보는 원래 29일 이 전 총재를 만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날 전두환.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면담이 예정된 점을 감안, 이 전 총재와의 회동을 하루 앞당겼다. 이 전 총재에 대한 예우 차원이었다. 이 전 총재 측도 'OK'했다고 한다.

하지만 돌연 면담을 취소한 데 대해 이 전 총재 측 이종구 전 특보는 "이 전 총재가 몸이 편찮아 생긴 돌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측근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급체까지 겹쳤다. 바깥 거동이 어렵다"고 전했다. 그러나 주변에선 "이 전 총재가 며칠 전부터 심기가 불편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이 전 총재의 심기가 편치 않은 게 경선 다음날인 21일 이 후보가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만찬 회동한 것과 관련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나라당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이 전 총재로선 두 사람의 만남이 탐탁지 않은 회동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전 총재와 가까운 인사는 "지금이 (YS 대통령 때인) 신한국당 시절도 아니고…"라고 말끝을 흐렸다.

YS는 이번 경선에서 이 후보를 도왔다. YS의 김기수 비서실장은 "두 사람이 통하는 게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 전 총재는 후보 시절 YS 탓에 늘 노심초사했던 기억이 있다.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가 회동 불발의 원인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2002년 이 후보가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할 때만 해도 두 사람은 가까웠다. 당시 경선 경쟁자였던 홍사덕 전 부의장이 '이심(李心.이회창 지지)' 논란을 제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2005년 10월 이 후보가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노무현.이회창을 놓고 인간적으로 누가 더 맘에 드느냐 하면 노무현이다. 이쪽(이회창)은 너무 안주하고 주위에 둘러싸고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게 보도되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이 후보가 당 홈페이지에 "진의와 달리 전달됐다. 이 전 총재는 당과 나라를 위해 받들고 모셔야 할 어른"이라고 사과의 글까지 올려야 했다.

요즘엔 "관계가 회복됐다"는 얘기가 많다. 그러나 "두 사람이 출신부터 스타일까지 너무나 달라 가까워지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전 총재는 이번 경선 동안 주변으로부터 정계복귀 요청을 받았다. 이명박.박근혜 후보가 검증 공방으로 격돌, 후보 낙마설이 제기됐을 때다. 이 전 총재는 정계복귀설이나 한나라당 후보 낙마설에 대해 "가설과 가정에 대해 얘기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두 후보가 추인한 한나라당의 새 대북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 전 총재의 미묘한 행보와 정치적 입장을 눈여겨 보는 사람도 있다. 이 전 총재의 심기를 편치 않게 한 근본적 원인이란 얘기도 나온다

고정애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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