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31. 서울대 사설학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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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해 웁살라대를 찾아 기념 촬영한 필자(中).

 “내 월급이 왜 이렇게 적습니까?” 나는 웁살라대 본부에 가서 행정직원에게 따지듯 물었다. 연수를 끝내고 박사과정에 입학한 뒤 받은 월급이 다른 대학원생보다 20%나 적은 것을 알고 본부로 뛰어간 것이다.

 직원의 말이 걸작이었다. “당신이 서울대를 졸업했다고 하는데, 관계 자료를 아무리 찾아봐도 서울대라는 곳이 없다. 아마도 당신은 사설학원 같은 곳을 나오지 않았나 한다. 단지 당신 지도교수인 투베 교수가 허락해 박사과정에 받아주고 연구원으로서 월급을 주는 것이다.”

 충격이었다. 한국에서 제일이라는 서울대를 웁살라대 교수나 행정직원이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는 지도교수가 나의 학력을 인정해주면 깎인 월급을 올려주겠다고도 말했다.

 1년 연수 기간 동안 나는 국제원자력기구로부터 매달 180달러씩 받았다. 그건 박사과정 학생이 연구원으로서 받는 월급과 액수가 같았다. 나는 그 돈 중에 일부를 한국의 집에 생활비로 부치고, 나머지는 용돈으로 썼었다. 당시 우리집 형편은 어려웠다. 한국전쟁이 끝나고도 얼마 동안 내가 미제 장사로 돈을 모았지만 주변 사람한테 사기를 당해 다 날려버렸다. 이 때문에 내가 스웨덴에서 보내주는 돈이 우리집 생활비에 큰 보탬이 됐었다.

 월급을 깎인 것도 화가 나는 마당에 모교인 서울대를 사설학원 정도로 보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러나 어떡하겠는가. 당시 서울대에는 연구 실적이 거의 없는 교수가 많았다. 유명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내는 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던 때였다. 그러니 투베 교수가 서울대를 알 턱이 없었다. 대학의 존재는 유명 교수들과 그들의 연구 성과로 알려진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우리 대학이 세계 100위권이니, 몇 위니 해봐야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국내 대학 관계자들이 잘 알아야 한다. 그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행정직원한테서 그런 말을 듣고 연구실로 오는 동안 나는 정말 한참이나 허탈했다. 지도교수가 인정하면 해주겠다던 월급 20% 인상은 박사과정이 끝날 때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박사과정에 들어가게 된 배경은 이렇다. 연수 기간이 6개월 정도 남은 1963년 봄이었다. 스웨덴의 연구 분위기를 맛본 뒤로는 이 학교에 남거나 미국 대학으로 유학을 가고 싶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등 몇 곳에 입학 허가를 신청했으나 학부 성적이 엉망이어서인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부는 제쳐두고 놀러만 다닌 대가였다. 그런 저런 이야기를 투베 교수에게도 했다. 이 때문에 투베 교수는 미국 쪽으로 유학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해 5월이었다.

 “장희, 미국 유학 계획은 잘 돼가나?” “아니요.이런 저런 이유로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러자 투베 교수가 자기 밑에서 박사과정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해왔다. 그동안 내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눈여겨봤던 모양이다. 그 말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잴 것도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투베 교수는 대학원생으로 나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다른 박사과정 학생과 똑같은 월급을 주는 것까지는 배려하지 않았다. 그때 기억은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조장희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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