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외교가>동구권 대사 한국어 실력 모두 수준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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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駐韓외국대사들 가운데 누가 우리나라 말을 가장 잘 할까.
현재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외국대사는 이지도르우리안 루마니아대사(60).산도르 에트레 헝가리대사(53).야로슬라브 바린카 체코대사대리(63).장팅옌(張庭延)中國대사(58).페렌렌 우르진르훈데브 몽고대사(47).구엔 푸 빈 베트남대표부 대표(46)등 6명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모두 舊공산권 국가출신들로 대부분 北韓에 유학하거나 북한주재 외교관 생활을 오래한 덕분으로 우리 말을 유창하게 한다. 이들의 한국어 실력은 수준급이며,서로 막상막하의「고수」들이기 때문에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는 것이 외무부 관계자들의 설명. 55년부터 60년까지 金日成대학 유학기간을 포함,총12년간 북한생활을 한 우리안 루마니아대사는 지난 92년 6월 코리아 헤럴드 주최 외국인 한국어웅변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한국어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우리안 대사는『한국어를 배 우면서 뜻이 비슷한 단어들이 많아 애를 먹었다』며『가령「죽는다」는 뜻을 가진 단어들을 헤아려보니「사망하다」「서거하다」「숨지다」「숟가락을 놓다」등 32가지나 되더라』고 해박한 한국말 지식을 과시했다. 이달말 본국으로 귀임하는 에트레 헝가리대사는 59년 평양유학을 시작으로 한반도에서 20년 넘게 생활했다.덕분에 그가 한국어로 말할 때 눈을 감고 들으면 외국인인지 알수 없을 정도로 완벽에 가깝다.
에트레 대사는 지난 92년 6월 SBS의「남편은 요리사」등 십여차례의 TV출연으로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 길거리에서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커다란 취미라고 밝혔다.다른 대사들이 직무상 필요 때문에 한국어를 배운 것과는 달 리 바린카 체코대사대리는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에서 말을 배우기 시작한 독특한 케이스.13세때 강용흘의 영문소설『草堂』을 읽고 처음 한국문화에 매료된 그는 한국미술사.한국의 고유전통등 6권의 한국관련 저서를 펴내「한국인보다 한국을 잘 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바린카 대사는『올해 정식대사가 부임해오면 한국에 정착해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우리 나라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北京대학에서 조선어를 전공한 장팅옌 중국대사는 서울에 오기전해외근무를 줄곧 평양에서만 해온 중국정부내의 한반도 전문가다.
부인 탄징(譚靜)여사도 북경대학 조선어과 출신이어서 장대사 내외는 외교가 행사에 참석해 한국인들과 어울릴 때 에는 부부가 함께 한국어로 대화를 나눈다.
우르진르훈데브 몽고대사는 김일성대학에서 조선어와 역사를 전공하고 84년부터 89년까지 북한주재대사를 역임하는등 모두 14년간 평양에서 생활했다.『춘향전』『홍길동전』을 즐겨 읽을 정도로 한국말이 유창한 그는 지난 92년 딸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시켜 「대를 이어」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고교졸업 직후 17세때 곧바로 김일성대학 유학길에 올랐던 빈베트남대표는 북한 사투리가 약간 배어있기는 하지만 고려.조선시대 한국문학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을만큼 한국어 실력이뛰어나다.
빈 대표는『베트남어가 한자에서 차용됐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는데 이해가 빨랐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어를 잘하는 대사들이 특정지역에 편중돼있는 원인에 대해 동구권의 한 외교관은『과거 공산국가들은 정부의 필요에 의해 지역전문가들을 정책적으로 양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그는『이들 국가는 아무리 외교적으로 비중이 약한 나 라라도 그곳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외교관을 두고 있으며,이것이 서방외교관들과의 큰 차이점』이라고 분석했다.
〈李碩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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