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회당 '날개 없는 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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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프랑스 제1 여당은 대중운동연합(UMP)입니다. 그럼 제2 여당은 어느 당일까요."

얼마 전 프랑스 라디오의 정치 풍자 프로그램에 나왔던 황당한 퀴즈 문제다. 정답은 제1 야당인 사회당이었다. 정책도, 정체성도, 지도자도 없는 3무(無) 정당으로 전락한 사회당을 비꼰 것이다.

◆여론 주도 못 해=지난주 프랑스에서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미국 휴가와 유아성애병자의 어린이 납치.성폭행 사건이 가장 큰 뉴스였다. 사회당은 외유를 집중 공격하며 사르코지의 귀국만 기다렸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도착하자마 긴급 각료회의를 열어 성범죄자에 대한 초강력 조치를 발표했다. 호르몬 요법으로 성욕을 억제하는 '화학적 거세'까지 거론했다. 그러자 사회당은 "있을 수 없는 인권 유린"이라고 펄쩍 뛰었지만 여론은 "피해자의 인권이 우선"이라고 강조한 사르코지의 손을 들어줬다. 여론조사에서 그는 65%의 지지를 얻어 사회당을 머쓱하게 했다.

5월 대선 이후 사회당은 줄곧 이런 모습을 보여왔다. 특히 사르코지가 쏟아낸 전방위 개혁 정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잇따른 세금 인하 조치를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라고 비난했지만 혜택은 세입자들에게도 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업 중에도 버스나 지하철 운행을 계속하겠다는 최소 서비스제도를 노동단체들과 함께 반대했지만 국민의 70%는 사르코지의 편이었다. 자신을 좌파로 보는 사람들의 59%가 이 제도를 지지했을 정도다. 지난달 말 몇몇 노동단체와 함께 개혁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으나 관심을 끌지 못해 흐지부지됐다.

◆주인 없이 갈 길 못 찾아=사회당의 가장 큰 문제는 리더의 부재다. 대표선수였던 세골렌 루아얄의 모습은 몇 개월째 찾아보기도 힘들다. 좌파지 리베라시옹은 차기 사회당 리더를 묻는 조사에서 루아얄이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고 22일 보도했다. 그러나 지지도는 15%로 스트로스 칸의 절반에 불과하다. 지난해 11월 60%가 넘는 당내 지지를 얻어 대선 후보에 오를 때와는 상황이 너무 다르다.

게다가 상당수 사회당 인재가 사르코지 밑으로 들어갔다. 사르코지의 경제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스트로스칸은 국제통화기금(IMF) 차기 총재 후보로 추천받은 뒤 엘리제궁을 드나들기에 바쁘다. 베르나르 쿠슈네르는 외무장관에 올랐고, 사르코지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되는 이유를 놓고 자비에 베르트랑(현 노동부장관)과 설전을 벌였던 자크 랑 전 문화부 장관은 사르코지의 야심작인 '정부기구 현대화위원회'에 들어갔다. 이 때문에 사회당이 제2 여당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현재 사르코지는 60%대의 높은 지지도를 기록하고 있다. 한 경제 월간지의 설문조사에서는 가장 성공한 프랑스인에 성자 에마뉘엘 수녀와 함께 공동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사르코지의 독주를 막을 만한 인물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게 현지 언론의 분석이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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